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씀 May 20. 2021

엄마 생일날 아내가 태어났다

아내가 들어 있는 말들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 주는 그 대 손 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 묻힌 손으로 짚어 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황지우, '늙어가는 아내에게' 중)



5월 21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가정의 달 5월에, 둘(2)이 만나 하나(1)처럼 살자고 다짐하는 날이라 합니다. 마치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포옹해야 완전해지고, 그래야 안전해진다는 걸까요. 우리는 서로에게 우리가 되어 줄 때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결혼 초에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 줄게."


하지만 '세월'이라 불러도 되는 시간을 보낸 지금 저의 생각은, 부부는 결코 하나처럼 살면 안 된다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각자의 모습을 자주적으로 유지하며, 서로의 물리적, 심리적 공간을 존중하며, 따로 또 같이 사는 것이 바람직한 '부부'의 모습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29년 전 12월 13일, 첫눈이 내리던 날 우리는 결혼했습니다.


흰 눈을 털어내며 자유예식장을 찾아주신 어른들이 그러셨습니다. 눈 오는 날 맺어지면 잘 산다고, 파뿌리처럼 아니 하얀 눈처럼 흰머리가 될 때까지 백년해로할 거라고. 29년이 지난 지금 그날을 돌아봅니다. 탈 없이 커 준 아이들, 넉넉하진 않지만 지낼만한 울타리, 텃밭에서 아내 손잡고 같이 보는 영화, 서로의 주머니에 손 넣고 걷는 산책길. 그날의 주문 같은 말대로 아내와 저는 머리에 흰 눈이 내렸고, 최선을 다해 늙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이상형이 아니었습니다.


이상형은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입니다. 즉, 한순간의 끌림으로 만나지는 것이 아니라 긴 세월을 함께 부대끼며, 서로 다름을 극복하며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사랑의 시작이라고들 합니다. 길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를 볼 때마다, 그 험난했을 극복의 세월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장환경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 등에서 비롯되었을, 각종 오해와 불신을 감당해 낸 두 사람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사진을 찍을 때, 숨을 참고 인내하면서 조리개를 조이다 보면, 마침내 두 개의 상이 하나로 일치하는 순간이 옵니다. 그때가 바로 사진이 만들어지는 순간입니다. 이상형도 그런 겁니다. 아내와 저도 그렇게 사진처럼 서로의 이상형으로 만들어지는 중입니다. 음, 29년의 세월 동안 적어도 29% 정도는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엄마 생일에 아내가 태어났습니다.


아내의 생일은 엄마의 생일입니다. 해마다 어머니 생신이면, 아내가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들고 어머니를 찾아뵙습니다. 사 먹으면 되지, 뭐하러 힘들게 만들어 왔냐, 하시며 쇠고기 미역국과 잡채를 맛있게 드십니다. 저는 기쁘면서 한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자신의 생일을 묻은 채 다른 이의 생일을 준비하는, 그 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생일이 별거냐며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합니다. 그러나 시어머니 생일 뒤에 몸을 숨기고 내색하지 않는 아내가 안쓰러워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는, 내 생일은 이것으로 되었다, 어서 가서 며느리 생일 챙겨주거라, 하시며 우리를 내쫓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당부가 아니더라도, 아내의 생일은 반드시 별거여야 하고, 세상 어떤 일보다 특별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아내의 생일 역시 애들에겐 엄마의 생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던 날들이 많았습니다.



아내에게 의자가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아들보다 나이 많은 며느리도 싫고, 나이도 나이지만 맞벌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어머니는 결혼을 반대하셨습니다. 아들 고집에 마지못해 물러서긴 하셨지만, 어머니는 제가 없을 때 아내에게 전화를 하셨나 봅니다.


"요즘 맞벌이 아닌 집이 어디 있노?"

"둘이 벌어야 빨리 일어서지."

"니는 집에서 뭐하노? 니도 돈 벌어라."


죄를 지은 것도 아니면서 죄인처럼 아무 말 못 하고, 시어머니의 가시 돋친 말들을 아내는 말없이 받아내고 있었습니다. 심장에 가시가 박히면서 얼마나 아팠을까요. 시어머니 전화만 오면 심장이 벌렁거린다는 아내의 말을 저는 흘려 들었습니다. 어머니, 사실 저희도 맞벌이 부부랍니다. 남편은 집 밖에서 수입을 가져오고, 아내는 집 안에서 지출을 막아낸답니다. 이렇게 말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내가 힘든 줄 모르고 그저 밥 달라 물 달라하고, 식탁의자에 앉아 반찬투정을 했습니다. 그 사람 바쁘게 서 있는 줄 모르고 소파에 등을 기대고 TV만 봤습니다. 이윤추구를 위해 노동력을 착취하는 악덕업주처럼, 나 역시 아내를 착취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늘 나에게 의자가 되어 주었지만, 나는 아내에게 의자가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힘들 때 잠깐이라도 앉을 수 있는 의자, 잠시 앉아서 부은 다리 주무를 수 있는, 그냥 작은 의자면 되는데 말입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아내에게 나의 늙은 무릎을 내밉니다.



아내가 꽃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첫 번째 아니면 두 번째 결혼기념일이었을 겁니다. 나름 우리 결혼을 기념하려고 호기 있게, 아내에게 꽃(아마 장미 백송이였을 겁니다.)을 보냈다가 호된 질타를 받았습니다. 넉넉지 않은 살림 뻔히 알면서, 한 푼이라도 모아야 하는데, 신용카드로 꽃이나 긁는 철딱서니 없는 가장이라며, 아내는 벼락같이 화를 내곤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아내가 꽃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어느 봄날 아내가 화분에 핀 꽃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너도 나처럼 고생이 많았구나. 용케 참아 주었구나. 고맙다. 예쁘다."


그렇습니다. 꽃으로 피기까지 견디어 냈을, 힘든 고초의 시간과 꽃잎 한 장 한 장 담겨 있는 인내의 시간에 대하여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줄기와 뿌리가 어떻게 힘을 합쳐 살아냈는지를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꽃을 좋아하는 이유가 이런 연유란 사실도 말입니다. 아내는 꽃에게 자신을 투영하며, 위로하고 위로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내는 결코 꽃을 좋아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아내는 곧 '나'입니다.


사람들은 처음에 '사랑'으로 부부가 되었다가, 같이 산 세월의 '정'으로 살게 되고, 결국에는 '의리' 때문에 부부로 사는 거라고 합니다. 저도 처음에 아내가 여자로만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친구로 보이기 시작했고, 이십구 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아내가 '나'로 보입니다. 그래서 아내가 없으면 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내는 곧 '나'입니다.




이 메모는 아내의 암 진단 결과를 통보받은 날, 울다 지쳐 잠이든 아내를 이불로 덮어주고, 내방으로 와서 혼자 울다가 쓰다가, 쓰다가 울다가 했던, 아직 아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글입니다.
오늘, 아내의 날벼락같은 진단 결과를 받았다.

이제는, 어제 본 오늘이 더 이상 오늘과 같지 않다. 욕실 수도꼭지를 틀면 언제든지 물이 나오는 것 같이, 언제든지 오늘이 오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아비가 떠나던 날 하늘이 무너지고, 어미가 떠나던 날 땅이 꺼졌다면, 아내가 떠나는 건... 이 세상에서 내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 사람은 바로 '나' 자체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지만, 아내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운 생각을 하게 될 줄 몰랐다. 아내가 없는 삶을 상상도 하지 않았는데, 그럴 수도 있다는 불안한 생각이 자꾸만 마음속에 구체화되고 있다. 기다림... 이제는 아름답고 행복한 날만 남아 있는데, 아내가 기다려주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지금껏 힘들고 어려웠던 날들 함께 잘 넘겼는데, 이제는 좋은 남편과 좋은 아내로 같이 웃는 중인데, 조금만 기다리면 되는데, 그 기다림이 자꾸만 떠나려 한다.

아,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 부부라는데, 진짜로 하나로 남게 될까 두렵다. 피곤하다는 아내의 호소를 왜 흘려 들었는지, 다른 장기로 전이되기 전에 왜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정말 후회스럽다. 급하게 잡힌 수술 날짜를 달력에 눈물로 동그라미를 친다. 그리고 어디까지 메스를 댈지 모르는 말기암으로 분류되는 아내의 병. 성공적인 수술이라 하더라도 얼마나 오랫동안 아내를 볼 수 있을까? 아내가 있는 오늘이 얼마나 내게 허락될까?

개수가 정해진 '오늘' 중 하나가 사라지고 있다. 안타깝고 또 너무나 아깝고, 아픈 '오늘'이다. 같이 늙어가자는 작은 소망이 이리도 큰 욕심이 될 줄 몰랐다. 정말 모르겠다. 나는 모르겠다. 내가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보, 떠나지 마. 조금만 더 기다려 줘.
눈물에 얼룩진 종이에는 여기까지 쓰여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창피하기도 하지만, 그땐 정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졌습니다. 다행히 수술 후 경과가 좋아 아내는 정기적인 추적관찰 중이며, 웃음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아내의 꿈을 찾아주고 싶습니다.


엄마의 꿈이 '엄마'였을 리 없듯이, 아내의 꿈도 '아내'는 아니었을 겁니다. 우리 부부에게 허락된 '오늘'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아내의 꿈을 같이 이루어내는 일을 우선으로 하리라 결심합니다. 아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며 좋아하던 일 두 가지를 알고 있습니다. 흙을 만지는 일과 돌을 다루는 일입니다.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 일을 할 수 있게, 가마는 나중으로 미루더라도, 먼저 물레가 있는 아담한 작업실을 꾸며 주고 싶습니다. 이름도 지어 놓았습니다. "가나무도예공방"이라고. 가나무는 떡갈나무를 말합니다. 돌을 다루는 일은 더 고민을 해볼 작정입니다.



부부로 산다는 것


이유가 있어야 만나는 사람을 '지인'이라 하고, 이유가 없어도 만나는 사람을 '친구'라 한답니다. 그리고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을 '연인'이라 한다지요. 아내가 이제부터 친구로 살자고 합니다. 나는 '대답 없음'으로 대답했습니다. 지인으로 만나 친구처럼 지내다, 잠깐 연인이 되었다가, 부부로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친구로든, 부부로든, 아니 그 무엇으로든 오래도록 같이 살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저의 대답입니다.  다른 부부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합니다.





Epilogue

천국에 갈 때


사랑나무 밑에 앉아 먼 어디를 바라보는 아내의 뒷모습

TV 길거리 인터뷰에서, "천국에 간다면 어떤 것을 가장 가져가고 싶으신가요?"라는 질문을 하자, 한 노신사가, "꽃다발."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이유를 묻자, 노신사는 쑥스럽게 말했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아내를 만나는 거니까..."


아, 제가 만약 천국에 간다면... 저는 아내를 데려가고 싶습니다. 여기 세상에서 고생시킨 것에 대한 속죄라고 할까요, 거기서라도 호강하게 해주고 싶은 소망이라고 할까요. 출사 때마다 모델 겸 피사체로 아내와 동행한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찍은 사진 속 아내의 모습에서 세월의 늙음을 볼 때, 가슴이 아립니다. 어떤 꽃 옆에 서더라도 아내가 더 환했는데... 지금은 꽃이 더 환해 보입니다. 물론 나 없어도 천국 갈 사람이지만, 만약에 누가 천국 갈 때 무얼 가져가겠냐 묻는다면, 그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이전 01화 찍지 못한 사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