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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Jul 28. 2021

찍지 못한 사진

사진이 들어 있는 말들


80만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아버지 사진은 영정사진 한 장뿐... 더 많이 찍어드리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사진작가, 김중만)



아버지 사진을 보는데, 갑자기 내린 소나기가 화살처럼 가슴에 꽂힌다. 영정사진도 당신이 준비하셨다. 나는 단 한 장의 사진도 찍어드리지 못했다. 기분 좋게 취기 올라 아들내미 앉혀놓고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그러다가 슬그머니 주머니에 용돈 찔러주고 일어서던 아버지. 내가 찍은 사진 속엔 아버지가 들어 있지 않다. 아, 지금이라면 얼마든지 찍을 수 있는데... 똑같은 후회는 하지 말자. 지금 내게 소중한 사람들, 가능한 많이 찾아 가 사진에 담자. 단렌즈처럼 투명한 사진으로 미리미리.



사진을 찍으면 보이는 것들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나는 볼 수 있는 것이 많아졌다. 뭐랄까, 세상을 보는 시력을 회복했다랄까. 사진을 찍기 전에는 타인의 시선, 지나치게 알고 있던 정보, 흐릿한 선입견이 눈앞을 가렸지만, 카메라 앵글에 눈을 대자, 처음 안경을 썼었을 때처럼 안개가 걷혔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내 주변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고, 자연이 변하고 있었고, 세월이 늙어가고 있었다. 사람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렌즈는 본다. 아내의 사진에서 눈치 채지 못하던 세월을 보고, 아이들 사진에서 놓쳐버린 성장을 본다. 카메라 없이도 진작부터 보았어야 할 장면들을, 다시는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안경을 닦듯 렌즈를 닦는다.



사진은 카메라로 찍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사진을 찍는 건지 모르겠다. 어느 블로거는 행복해지려고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그는 행복이 가족들과 사진 돌아보며 다 같이 즐기는 데서 온다고 말한다. 맞는 것 같다. 서로 토라져 있다가도 가족앨범을 꺼내 들면 슬금슬금 모여들어 깔깔댄다. 사진엔 그 당시 정황들이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 소리며, 냄새며, 사진 밖 광경까지, 그때 아이들의 속마음은 어떠했는지도 사진 속에 다 들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하루 종일 새처럼 지저귈 수 있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아무리 사진이 많아져도 그걸 다 기억해 낸다는 것이다.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래도 사진과 사진을 찍는 사람의 기억에 투명한 바코드가 동시에 찍히는 것이 아닐까. 부동자세 군인들이 가득 찬 단체사진 속에서 힘들이지 않고 아들을 찾아낼 수 있는 것도 같은 까닭이라, 생각한다.

 

재즈 음악가 윈튼 마살리스는, 우리가 쓰는 도구가 더 발전했다고 해서 우리가 더 발전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크리스 오르위그는 '소울 포토'란 책에서, 갖고 싶은 장비에 집착하느니 그 집착을 극복하고 당신 손에 있는 것으로 찍으라고 했다. 비싸고 훌륭한 칼을 든다고 훌륭한 셰프가 되는 게 아니란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빨간 줄이 있는 L렌즈를 고집했다. 명품 렌즈로 사진을 찍으면 아무렇게 찍어도 명작이 나올 것 같았다. 나만의 화각대를 구성한다는 핑계로 그동안 거쳐간 렌즈가 31개나 된다. 나도 남들 못지않게 중증의 장비병을 앓았던 모양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 훌륭한 장비는 끊임없이 출시된다. 그것은 부족한 실력을 탓하기보단 뭔가 2% 부족한 장비 구성 탓이라고 생각하는, 덜 성숙한 사진가에게 끊임없는 유혹이 되는 것이다. 제습함에 들어 있는 장비들을 들여다보며 오늘도 뉘우친다. 광각에서 망원까지, 스냅용에서 접사용까지 갖가지 이유를 단 L렌즈가 즐비하다. 사진은 좋은 카메라나 렌즈로 찍는 게 아니란 사실을 다시 머금는다. 최고급 냄비에 명품 식칼이 있어야 맛있는 요리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 장비보단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 어쩌면 손보다는 가슴에, 마음에, 영혼에 더 달려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마음의 뺄셈


사진을 찍는다는 건 그런 것 같다. 뷰파인더 속에서 보이는 것들을 하나 둘 제외시켜 나가는 작업이다. 많은 것을 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더 이상 빼낼 수 없을 때까지 덜어내는 것. 오롯이 마음 하나만을 표현하는 것. 그런 사진이 감동을 주는 거라 생각한다. 마치 내 마음속에 누군가에 대한 미움, 서운함, 분노... 이런 불필요한 감정들을 담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사람에 대한 욕심을 하나 둘 제거해 나가는 것, 어쩌면 마음의 뺄셈이 인생의 산식이 아닐까.


누군가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주는 사람이 있고, 그 모습을 찍는 사람이 있고, 그 사진 찍는 사람의 모습을 찍는 내가 있다. 그리고 어쩌면 누군가가 내 뒷모습을 찍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 개미를 내려다보며 비슷한 상상을 했다. 우리를 개미처럼 내려다보고 있는 존재가 있을 거라고. 또 그 존재들을 지켜보는 큰 개미도 있을 수 있다고. 사진 속에서는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없다. 모두 작은 점으로 존재하는 소중한 피사체일 뿐이다. 우리가 세상이란 큰 사진 속에서 점 같은 개미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다 부지런한 진사들


랭보가 그랬다. 나무는 봄과 가을, 일 년에 두 번 꽃을 피운다고. 이른 아침 나는 두 번째 피는 꽃을 찍기로 작정하고, 나무들이 깨기 전에 소문난 단풍터널이 있는 인천대공원을 찾았다. 이런 벌써 진사들이 우글댄다. 포인트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점거한 모습에 실망감도 들었으나 이내 웃음이 나왔다. 대. 단. 하. 다. 뭐 한발 늦었으면 어떠냐. 그들의 선점은 내가 잠든 시간에 이루어졌으니. 실망보다 유쾌한 웃음 나오는 건 새벽이라 그런 게 아니다. 인생도 이것처럼, 끈질기게 부지런 떨다 보면, 나의 자리가 만들어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자리를 찾지 못하다가 인근 부천 중앙공원으로 차를 돌렸다. 오... 가을꽃을 담으러 온 사람이 나 밖에 없다. 그래, 봄꽃을 놓치면 어떤가. 꽃보다 몇 배는 화려한 가을 단풍이 있는데. 꽃을 놓친 아쉬움에 매달려 살 필요 없다. 최선을 다했으면 그만이지, 잡지 못한 기회의 끝을 붙잡으려 전전긍긍 살지 말자. 여름에는 푸른 잎으로, 가을에는 불타는 단풍으로, 그리고 겨울에는 하얀 상고대로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게 나무이고, 인생이다. 그리고 지금은 가을이다. 가을에는 가을을 누리며 살면 되는 것이다. 가버린 봄을 찾거나 지나간 여름에 미련 둘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냥 이 가을, 붉은 단풍처럼 뜨겁게 타오르면 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어제를 잊고 오늘을 즐기는 것 아니던가. 이제 그만 철 좀 들자.



풍경 사진


나는 사람이 들어 있으면 인물사진이고 풍경이 들어 있으면 풍경사진인 줄 알았다. 그러다 수많은 사람들을 광각으로 담으면 풍경사진일까 인물사진일까, 의문이 들었다. 곽윤섭 작가는 '내 사진에 힘을 주는 101가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물사진, 풍경사진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산과 강만 풍경이 아니다. 거리도 풍경이고 집안도 풍경이다. 인물이 크고 많이 있다고 인물사진이라고 할 수 없다. 그는 모두 풍경이라고 얘기하는 것 같다. 즉 모든 사진은 풍경사진이다. 이렇게 인생을 풍경으로 보면 참 위안이 된다. 여유도 생긴다. 사진을 찍기 위해 내가 바라보는 풍경 속에 나는 없기 때문이 아닐까.


무엇이든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게 느껴지는 법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공세리 성당을 찍으러 세 번이나 찾고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살얼음 내리던 겨울에도, 잔뜩 비바람 불던 여름에도, 그리고 노을빛 떨어지는 가을에도 성당은 동요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렇구나. 사물이든 사람이든 있어야 할 곳에 있을 때 아름다운 것이구나. 있어야 할 시간이나 장소를 떠나 있거나, 있지 않아야 할 자리를 점유하고 있으면 아름답지 않다. 아무리 힘든 시련 속에서도 변함없이 제자리에 있어주는 모습보다 아름다운 풍경은 없는 것이다. 돌아보면 내 주위에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참 많다. 동트기 전 새벽길을 쓰는 사람도, 밤을 새워 검독회를 준비하는 사람도, 가장 뜨거운 태양 아래 소금을 말리는 사람도, 머물고 싶은 집을 떠나 출장길을 재촉하는 사람도, 아름다움을 위하여 살고 있는 것이다. 바깥을 떠돌다 집으로 돌아갔을 때, 변함없이 아이들과 집을 지켜내고 웃어주는 사람, 이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은 없다. 나도 걸맞은 아름다운 풍경이 되리라, 다짐한다.



전경과 배경


어떤 피사체 건 초점이 어디에 맞느냐에 따라 전경(figure)이 되기도 하고, 배경(ground)이 되기도 한다. 배경은 전경을 돋보이게 하는 거지만, 어떤 사진은 배경 자체만으로 아름다울 때가 있다. 사람은 주목받으면 누구나 주인공이 된다. 나는 전경보다 배경이 되고 싶다. 나의 장점으로 남의 단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장점으로 남의 장점을 빛나게 하는 아름다운 배경이 되기를 소망한다. 안도현 작가도 '연어'에서 같은 말을 했다. 살아가면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 주는 일이라고. 별을 더욱 빛나게 하는 까만 하늘처럼, 꽃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무딘 땅처럼 그런 거라고 했다. 나는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 주며 살고 있을까? 그렇게 되기를 소망은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게 배경이 되어 준 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면서, 나도 그들처럼 배경이 되려고 애쓰다 보면 어찌 되겠지, 생각한다.




Epilogue

차귀도 일몰


일몰 명소, 제주 차귀도 포구

누군가의 삶은 누군가에겐 풍경이 된다고 했다. 누가 멀리서 나의 삶을 바라보며, 참 멋진 풍경이다, 사진으로 담고 싶다, 느껴주면 좋겠다. 차귀도 불타는 하늘을 담으려 제주를 찾았건만, 새색시처럼 구름 뒤로 숨어버린 일몰. 왜 하필? 내가 온 날에? 그러나, 같은 상황임에도 실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어떤 사람 하나 내게 풍경이 되어 주었다. 나도 저처럼, 분하고 힘든 상황을 만나더라도 낙심하지 않고, 스스로 좋은 풍경이 되리라,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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