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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May 14. 2021

살 버리기 추억

가족 다이어트 대회


모자랄까 봐 걱정하는 그 마음이 바로 모자람이며, 하나가 필요할 때 둘을 가지지 마라. (법정스님)



아들이 입대했을 때였다.


"이상하죠? 집에 쌀이 줄지 않아요."


입 하나 줄었을 뿐인데, 아내는 쌀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며 놀라워했다. 아내는 아들이 밥 달라고 하지 않는데도, 머슴밥으로 차려 주고, 나는 딸이 사 달라고 하지 않아도, 붓이며 물감이며 미리 사 주었다. 다 모자랄까 걱정하는 모자란 마음 때문이다. 이것을 '배려' 혹은 '자식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모자람은 소중함을 데려온다. 부족함은 분발의 계기가 된다. 모든 것이 풍족한 이 시대에 단 하나 부족한 것은 '결핍'이란 생각이 들었다.


2009년 7월 경에 있었던 일이다.


죽을 만큼 먹고, 죽지 않을 만큼 운동하던 우리 가족이 5만 원 지폐 4장을 걸고 살 버리기 내기를 하였다. 각자 현재의 체중을 기록하고, 정확히 한 달 후 가장 많은 살을 버린 사람이 20만 원을 차지하기로 합의했다. 물론 자기 체중에 비례한 감량 비율을 따지는 것이 공정하겠으나, 아들 녀석의 강력한 항의에 부딪쳐, 그냥 단순 감량제로 룰을 정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 녀석이 가장 유리한 방식이었던 것이다.


아들(고 1) *** kg, 딸(중 1) 6* kg,  그리고 성인 여성분 6* kg, 마지막으로 성인 남성분 8* kg.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체중은 공개하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아들 녀석 체중이 세 자리 숫자라는 것만으로도 우린 충격이었고, 모녀의 체중이 엇비슷하다는 사실은 그다음 충격이었다. 나야 그래도 간헐적 운동을 계속하고 있었으니... 돈이 든 봉투에 각자의 몸무게를 적어 체중계 앞 벽에 봉인하여 붙여 놓았다.


그날 저녁부터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밥을 퍼 주는 딸아이는 가족들의 밥은 꾹꾹 눌러 주면서, 제 밥은 절반도 안되게 퍼 담는 것이 아닌가.  


"많이들 드세요. 호호호"


지가 언제부터 가족들을 위했는지... 아들 녀석은 야자 끝나고 돌아온 밤 9시에, 배고프다며 항상 밥 한 그릇을 퍼 먹었는데, 이제는 물만 들이켜고 제 방으로 들어간다. 아내 역시, 애들 밥상 차릴 때마다 옆에서 수저 들고 거들던 행동이 줄어들었고... 이건 내기라기보다 살벌한 전쟁 수준이었다. 어찌 되었든 나쁘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집에 있으면, 밥솥 가득 밥을 해서 퍼 먹고는 설거지를 해놓고 시침 떼던 아이들이, 주말마다 치킨이며 피자를 시켜 먹자고 조르던 녀석들이, 고기를 못 먹어 힘이 없다며 투정하던 놈들이, 이제는 먹는 것을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20만 원 상당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비만에 따른 식품비와 의료비 절감액을 감안하면 말이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나는 살 버리기 내기가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였다. 누가 우승하게 될까? 저번 우승자인 아들이 강력한 우승 후보이다. 왜냐하면 아들은 물 살이기 때문이다. 그 뒤는 딸이고, 아내가 우승할 확률은 극히 낮을 거라 생각한다. 남은 음식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있고, 여전히 냉장고가 터지기 직전까지 장을 보는 걸 보면 그렇다. 그렇다면, 나는?


현재 2kg 정도 감량한 나에게도 비장의 카드가 있다. 아직 그 카드를 쓸 건지 말 건지 결정하진 못했지만 말이다. 나의 비장의 카드는 이것이다. 내기 종료 일주일 전부터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그것도 손쉽게 살을 불러 모으는 배달음식들, 주로 강력분 밀가루를 사용한 음식들을 마구마구 사주는 것. 밤에는 라면 끓여 먹이고, 퇴근하면서 큰 햄버거 사다 주고... 이렇게 마지막 일주일 동안 비장의 카드로 마수를 펼치면... 내가 우승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가족 살 버리기 내기에서, 아들이 5.8kg의 살을 버려 우승하였다. 역시 물 살은 잘 빠졌다.




지금은 어떠하냐? 묻지 마시라. 노코멘트하겠다. 다만, 나는 버린 살들의 회귀본능을 믿게 되었다, 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고 보면, 언제부터인가 배가 고프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다. 배고픔을 느끼기도 전에, 때를 맞춰 배를 채우기 때문이다. 부족의 결핍, 충족의 과잉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채우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비어 있지 않으면 채우지 않는 법이다. 배고프지 않으면 먹지 않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의식적으로 몸과 마음속을 비우는 노력을 해야겠다. 우리도 솜털처럼 가벼워지고 싶은 욕구와 그럴 권리가 있다. 모든 게 풍족한 이 시대에 부족한 것은 정말로 '결핍'뿐인 것 같다.





Epilogue

코끼리도 풀만 먹는다


통통한 오징어가 마른오징어가 되기 위해 다이어트 중이다.

좀 뚱뚱한 아이가 살을 뺀다고 엄마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앞으로는, 풀만 먹겠다, 라고. 그러자 엄마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코끼리도 풀만 먹는단다."


딸이 자주 하는 얘기, 이제는 채식만 할 거라고요. 그러나 풀도 많이 먹으면 분명히 살이 찐다. 흔히 물만 먹어도 살찌고, 공기만 마셔도 살이 찌는 체질이라고 정당화한다. 그런데 그것이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다고 한다, 물리학과 출신의 뚱뚱한 아들의 말에 따르면. 물에는 무기질이 있어 살이 찔 수 있고, 공기 중에는 질소가 많이 있어 살찌는 게 가능하다고... 검증된 주장인지는 알 길이 없다.


소녀시대 제시카에게 기자가 다이어트의 비결에 대해서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죽을 만큼 운동하고, 죽지 않을 만큼만 먹었어요."


그렇다. 다이어트의 비결은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것, 이것 말고는 없는 것 같다. 먼저 덜 먹는 일, 하루 두 끼로 줄일까? 그다음 많이 움직이는 일, 앉아 있지 말고 서 있을까? 만약, 하루 두 끼를 풀만 먹고, 잘 때 외에는 앉거나 눕지 않는다면... 그래도 살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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