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에 관심 갖기
무관심이란 잔인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매우 활동적이며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무관심은 무엇보다도 해롭고 불결한, 권력의 남용과 탈선을 허용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20세기는 바로 그러한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비극적인 증인이다. 하나의 제도를 만드는 데 있어서 국민들로부터 무관심을 얻어냈다는 것은, 부분적인 동의를 얻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승리를 거두었음을 뜻한다. 사실 어떤 체제가 대중적인 동의를 얻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대중들의 무관심에 의해서이다. 그때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바이다. (비비안느 포레스테, "경제적 공포 ; 노동의 소멸과 잉여 존재" 중)
나는,
누가 더 국민을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들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침묵을 묵시적 동의인양 치부하는 행태에도 마냥 무관심할 뿐이다. 왜냐하면, 꽃이 핀 아름다운 화단을 망치는 지름길은 꽃밭에 불을 지르거나 파헤치는 수고를 하는 것보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무관심은 잡초를 무성하게 키워 이내 화단을 못쓰게 만든다.
무관심은,
사람을 아프게 하는 가장 예의 바르고 잔인한 방법이라 했다. 긍정도 부정도, 어떤 형태의 에너지도 상대방에게 주려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무관심이다. 무관심은 범죄다, 무관심을 갖도록 만드는 것은 더 큰 범죄다. 특히 우리는 삶에 무관심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지갑에서 내 돈을 누가 가져가든 말든 무관심하거나, 가드를 내린 채 사각의 링에 무방비로 서 있는 권투선수처럼 인생을 살아선 안될 일이다. 될 대로 되라며, 사는 일에 흥미와 관심을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이제는 무관심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딸 그림, 무관심에 관심을 갖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