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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Jan 05. 2022

조심조심

# 이제 다른 식으로 살아도 될까


얼마 전, 내 친구 한 명이 이런 질문을 했다.

"이제 너무 늦지 않았을까? 뭔가 다른 식으로 살기에는."

난 이렇게 대답했다.

"몇십 년 그렇게 살았으니까 이제 좀 다른 식으로 살아봐도 되지 않을까?"

(황경신, '버리기로 결심한 사람들에게' 중)



음, 


나도 그런 생각이 든다. 반 세기 동안 남을 의식하며 살았으니까, 이젠 나를 좀 의식하며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런다고 누가 뭐라 하지는 않겠지. 이제는 그래도 될 것 같은 생각이 조심스럽게 든다. 그리고, 지금까지 세상을 너무 조심조심 살았다는 후회도 든다.



그래서일까. 


요즘 들어 내 모습이 측은해 보이기도 하고, 아깝다는 생각도 들고, 좀 그렇다. 까닭 없이 흐르는 눈물 같은 밤이면, 앞으로 내가 나를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해 보기도 한다. 여기 남도에 내려와 혼자 있어보니 알겠다. 결혼 후 지금까지 내가 나를 만난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을. 삶의 우선순위는 내가 아니었다는 것을. 



관계란


같이 있어도 소원할 수 있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친밀할 수 있는 거지만. 같은 공간에 같이 있는 나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자기마저 자기를 돌보지 않았으니 말이다. 주인이 집을 사랑하지 않고 떠나면 그 집은 폐가가 되는 법이다. 이제부터 나를 빈집에 혼자 두지 않겠다는... 늦은 결심을 한다.



똑똑. 


안에 누구 있어? 

뭐 하고 있어? 

그동안 어찌 지낸 거야? 

너무 오랜만이지?


어떤 사람을 알기 위해선 그와 대화를 시도하듯이, 나를 알기 위해서도 나와 이야기하면 된다. 여느 대화처럼 따뜻한 물음으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놀라지 않게 천천히, 한 번에 한 가지씩 조급하지 않게. 가만히 기다리면 반드시 대답이 들려올 것이다. 내 안에서 나를 향해, 조심조심 한 발을 내딛는 소리가.



그래 그렇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가 무어 그리 중요할까. 누군가 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개의치 말자. 그러든지 말든지 그냥 내버려 두는 거다. 그건 그들의 문제이지 나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내'가 더 소중한 거다. 이제는 전과 다르게 살아보자고 마음을 먹으니, 내가 점점 좋아진다. 세상에 늦은 시작은 정말로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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