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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Apr 20. 2022

부상(浮上)

# 침몰 멈추고 떠 오르기.


왜 물에 가라앉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수록 바닥은 가까워 오는지. (중략) 이게 다 마음의 문제는 아닐까. 잘하려고 두 손 꼭 쥐는 대신 툭 하고 내려놓으면 '될 대로 되라지'하면 정말로 되는 게 인생 아닐까. (정민선, '어떻게 숨길까, 지금 내 마음을!' 중)



물에 빠져 본 사람은 안다. 


가만히 힘을 빼고 나를 내려놓으면 몸이 뜬다는 것을. 그러나 우리는 무엇이라도 붙잡으려는 욕심의 무게 때문에 가라앉고 만다. 여기 물 밖 세상도 물속과 다름없다. 살기 위해선 움켜쥘 것이 아니라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부상(浮上)할 수 있다.



만일,


배에 화물을 가득 싣는다면 결국 바닥으로 가라앉고 말 것이다. 사람도 지나치게 많은 열심과 욕심을 품으면 가라앉는 법이다. 열심이든 욕심이든 필요 이상으로 마음에 싣게 되면 배처럼 되는 것이다. 지나친 열심은 욕심이 될 뿐이고, 욕심이 앞서거나 많으면 욕심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욕심처럼 되지 않으니 좌절과 아픔이 커지게 되고, 견딜 수 없는 아픔은 결국 자신에 대한 분노로 터지고 만다. 그 폭발이 자신을 향할 때 우리는 침몰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은데 못할 때 아프다. 무엇을 해야만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아프다. 특히 어쩔 수 없었던 아픔보다, 어쩔 수 있었던 아픔이 더 아프다. 그리고 아픔을 참다 참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아픔은 결국 분노로 터지는 것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는 이문재 시인의 '농담' 이란 시의 마지막 구절을 알 것이다. 그래 농담이다. 아프면서까지 종소리를 멀리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시인의 말을 농담으로 알아듣지 못하고, 진짜로 아픔을 참고 또 참다가 결국 침몰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 곧고 멀리 가기 위해 아파하는 거라고 변명하는 사람... 바로 우리 같은 사람이다.



언제부터,


가라앉기 시작했는지. 눈을 뜨고 가만히 나의 침몰을 보라. 필요 이상으로 불어 있는 몸집과 걸치고 있는 남의 옷들, 필요 이상으로 품고 있는 생각들, 연결되지도 않을 인연의 붉은 닉네임들. 침몰의 원인이 무엇이든 움켜 쥔 것들 다 내려놓자. 그리하여 우리, 침몰을 멈추고 다시 부상(浮上)하자.






딸 그림, 우울한 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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