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기심을 회복하자.
이른 아침,
스피커폰으로 받은 것도 아닌데 엄마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말도 마라."
"코로나 있잖아. 저 우에 호배네 옆집에 난리가 났다, 오늘."
"그 집 온데 다 소독하고는, 이 동네 골목이란 골목은 다 소독하고 그랬다, 보건소에서."
"아 글쎄, 그 집 내외가 아랫장터 장례식장에 일하러 댕겼거든. 거기서 걸린 기라."
"안 가여, 함부래 나는 안 댕기지. 노인들이 코로나 걸리믄 죽는다잖아."
엄마는 이렇게 말했지만, 효도폰이라 불리는 엄마의 전화기는 다른 말을 내게 전한다.
"호기심 많으신 어머님은 소독하러 나온 보건소 직원을 붙잡고 전후 사정을 취조하듯이 캐물으셨습니다. 그리고는 보건소 직원 뒤를 슬금슬금 따라가 코로나 환자의 집 대문까지 가셨고, 소독하는 보건소 직원들을 감독관처럼 지켜보셨습니다. 그 후에는 예방차원에서 코로나 환자의 집 인근 골목길을 소독하는 보건소 직원을 불러서, 우리 집 골목도 소독을 해 줘야지, 그 골목만 하면 어떻게 하냐, 따지셨습니다. 그 집 사람이 이 골목도 자주 다녔다며, 신빙성 없는 말씀으로 기어이 소독을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리고는, 두 분의 이모님과 큰 아들 그리고 따님에게 이 뉴스를 전하신 후, 방금 작은 아들인 당신에게 전화를 거셨습니다."
엄마는 호기심이 많다.
84세임에도 항상 궁금하시다. 작은 동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엄마는 그 일의 사정을 알아야 직성이 풀린다. 시내 '떴다방'에서 누가 공짜로 두루마리 화장지를 받아오면 엄만 한달음에 달려가신다. 노인 상대로 건강기능식품과 생활용품을 고가로 속여 파는 얄팍한 상술이라고, 절대 가지 마시라, 만류해도 기어코 공짜 화장지를 안방에 쟁여 놓는다. 나도 알어, 사기꾼이란 거, 난 절대 물건은 안 사니 걱정 말어, 하신다. 그 연세에도 정정하신 엄마의 건강 비결은 이런 호기심 때문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호기심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특성이라고 했다. 미국 사회주의 작가 잭 런던은, 한국인의 두드러진 특성은 호기심이며 그들은 ‘기웃거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것을 한국말로는 ‘구경’이라고 한다, 고 했다. 적절하다. 우리는 '구경' 다니는 걸 좋아하는 민족이다. 물구경, 불구경, 싸움구경, 꽃구경, 단풍구경, 오죽하면 사람 구경까지... 엄마의 취미도 '구경'이었다. 그런 엄마를 닮아 나도 호기심 많은 아이로 자랐다. 아니 자랐었다.
그렇게 호기심 많은 아이였던 내가,
나이가 들면서 어느 순간, 세상 일에 대하여 호기심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피부의 탄력, 아무 때나 만날 친구, 이유 없이 나오는 웃음 등이 줄어드는 것에는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새롭고 신기한 것을 보고도 마음이 두근거리지 않고, 모르는 것이 있어도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다는 건 충격이었다. 그만큼 늙었다는 것일까? 아니지, 그럼 84세인 엄마의 호기심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설마 호기심도 소진되는 것일까. 궁금하지 않은 게 아니라 궁금해할 여유가 없는 게 아닐까. 그럴 여력이 없기 때문에, 애써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 거라고 결론짓는다. 밀물처럼 밀려드는 일들에 치여, 썰물처럼 빠져나간 나의 시간들. 어떤 대상이나 사람에 대하여 궁금해하지 않고, 전혀 묻지 않는다면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야 한다. 관계는 궁금증의 정도이고, 궁금한 게 없으면 그건 죽은 관계이다. 죽은 관계 속에서 장시간 노출되면 사람은 생기를 잃는다.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살고 싶다면,
애써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 태도를 버리고, 하루에 한 가지라도 일부러 관심을 갖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나와 이해관계가 없어도 세상에 관심을 두려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여유가 없다고 말하지 말자. 나에게 여유가 없는 것은 여유를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유는 능동적인 선택이다.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는 이유는 커피의 향이나 맛 때문이 아니다. 커피를 마심으로써 갖게 되는 여유로운 시간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유는 여유 있을 때 찾는 것이 아니라, 여유가 없을 때 찾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에게 결핍된 것을 먼저 찾게 된다. 여유도 마찬가지다. 여유나 쉼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선택에 의해 쟁취하는 것이다. 너무 바빠서 자리에서 일어설 여유가 없을 때, 누가 가져다주는 커피 한 잔은 커피가 아니라 '여유'임을 기억하자. 그리하여, 내가 언제 또 이런 일들을 다시 경험할 수 있을까, 스스로를 다독이며, 밀물 같은 일들과 썰물 같은 사람들에 대하여 호기심을 갖는 노력을 하자.
나이가 들었지만 나는 아직 호기심을 덜 배웠다. 엄마처럼 제대로 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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