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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Feb 25. 2022

이미 다 봄

# 벌써 봄이 와버렸다


길을 걷는데 햇빛이 이마를 툭 건드린다. 봄이야... 그 말을 하나 하려고 수백 광년을 달려온 빛 하나가 내 이마를 건드리며 떨어진 것이다. (권대웅, '햇빛이 말을 걸다' 중,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 수록)


천사 대교를 건너 잠시 차를 세우고,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데 무언가 훅 콧속을 찌른다, PCR 검사 면봉처럼.


'혹시, 오미크론?'

'아니야, 나 봄이야.'

 

그 향기를 맡게 하려고, 추운 겨울을 참아 낸 꽃들이 내 비강을 통해 가슴속까지 제 몸 가루를 뿌렸던 것이다. 꽃향기가 꽃의 일부이듯 생각도 사람 몸의 일부이다. 봄에는 봄처럼 생각하면 좋겠다. 새싹처럼 씩씩한 생각들이 마구 솟구쳤으면 좋겠다. 작년에 성공하지 못한 생각들도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 봄에는 보지 않았어도 본 것처럼 살아도 되니까. 봄이니까. 벌써 다 봄.


신안 자은도 가는 길에 동백꽃이 피었다. 양지바른 길가 관심을 받은 나무에만 꽃이 피었다. 사람도 그렇다. 봄꽃처럼 관심을 많이 받을수록 먼저 피어난다. 꽃에 대한 관심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보거나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관심도 똑같다. 관계가 시들지 않도록 왕래하고 서로 마음을 주고받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내 떠나갈 봄이 아쉬워, 서둘러 카메라 롤에 저장한다. 인생을 사계절로 나누면 25세까지가 봄, 50세까지가 여름, 75세까지가 가을, 100세까지가 겨울이라고 했던가. 분명 지금의 나는 봄이 아니다. 늦여름을 지나 초가을에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이렇듯 절실하게 봄을 소장하고 싶은 건 왜일까? 


겨울 속에도 잠깐의 봄이 있고, 가을 속에도 뜻밖의 봄이 있다. 여름은 더운 봄이고, 가을은 흔들리는 봄이며, 겨울은 추운 봄이다. 결국 봄은 다른 계절이 움켜쥐고 있는 희망인 것이다. 봄을 폰에 저장하면, 내 폰에 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거라는 바람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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