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아보는데 오래 걸렸다
가던 길, 잠시 멈추는 것, 어려운 게 아닌데. 잠시 발 밑을 보는 것, 시간 걸리는 게 아닌데.
우리 집, 마당에 자라는 애기똥풀 알아보는데, 아홉 해나 걸렸다.
(박희순, '참 오래 걸렸다.' 중)
갓 피어나는 홍매화 알아보는데 참 오래 걸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홍매화가 핀다는 순천 탐매 마을 찾아가는데 평생이 걸렸으니. 그동안 뭐하고 살았을까? 돌아보면 아득한 꿈같은 세월이다. 분명히 바쁘게 무엇을 하며 살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놈이 바쁘기는 왜 바빠?"
법륜스님이 어린 시절에 큰스님에게 들었다는 깨우침의 말이다. 나도 그랬다. 내가 어디로 가는 건지 모르고 살았다. 왜 바쁜 건지도, 왜 바빠야 하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내 의지대로 가고 싶을 때 가고,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나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에스컬레이터 위에 서 있는 사람처럼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떠밀려 가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바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착각을 한다. 열심히 하는 것이 최선이라 착각을 한다. 정말 그럴까. 혹시 바쁘지 않으면 죄를 짓는 듯한 불안감으로 살고 있지 않은지. 왜 바쁜 것인지, 정말로 바쁜 것인지 냉정하게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일이 많아 바쁜 사람은 일이 없어도 바쁜 법이다. 잘 산다는 것이 바쁘게 사는 것이 아니란 것을 이제 눈치챘으면 좋겠다.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은 나만의 이유를 갖고 있다는 뜻이고, 이유를 가질 때 여유가 생기는 거라 생각한다. 내 생존의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도 고민한다. 뒷사람이 나를 앞질러 간들, 앞사람을 내가 앞질러 간들 뭐 어떤가. 고작 인생일 뿐인데. 먼저 오르면 먼저 내려가고, 힘들면 쉬기도 하면서, 피어나는 봄꽃들을 격려도 하며, 정상에서 오래 머물 이유도 없는, 인생은 산행과 같은 것이다. 남과 속도를 다투며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만의 속도로 꾸준히 성장해 가는 것이다.
아직 겨울의 찬바람이 남아있는데도 굴복하지 않고, 꽃을 피워내는 홍매화는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 그래서 '선비의 꽃'이라 하는 것이다. 비록 홍매화를 알아차리는데 오래 걸렸지만, 나도 저처럼 꿋꿋한 의지와 기개를 가졌으면 좋겠다. 나만의 속도에 엄격하면서, 자발적 청빈의 가치를 따르며 늙어갔으면 좋겠다. 순천 탐매 경로당 앞에서 수묵처럼 담백한 홍매화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