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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Feb 13. 2023

철로의 간격

# 관계의 완충지대


우리는 서로 만나본 적은 없지만, 헤어져 본 적도 없습니다. 우리는 무슨 인연으로 태어났기에, 어쩔 수 없는 거리를 두고 가야만 합니까? 가까워지면 가까워질까 두려워하고, 멀어지면 멀어질까 두려워하고, 나는 그를 부르며 그는 나를 부르며 스스로 부르며 가야만 합니까. 나는 아직 하나가 되어 본 적 없지만, 둘이 되어 본 적도 없습니다. (김남조, '평행선' 중)



만나본 적도


헤어져 본 적도 없다는 말, 아직까지 하나인 적도 둘이 되어 본 적도 없다는 말, 조금은 이해가 간다. 평행선은 두 개의 선이 아니라 하나의 선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죽음까지 이어지는 선이라면 두줄로 나오는 펜으로 한 획에 그은 선과 같은 것이다. 또한 서로 떨어져 있지만 나란히 동행하며, '철길'이란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면 더욱 그런 것이다. 나란히 선다는 건 상처 주지 않겠다는 의도, 그 이격의 배려로써 상대를 존중한다는 뜻이다. 만일 부부가 철길처럼 평행선이라면 이상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도


간격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한 사람을 만나 '우리 하나가 되어 살자.'라고 말은 했지만, '우리'라는 복수명사가 '하나'라는 단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나는 우리가 하나처럼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격리되어 둘로 사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와 나 사이에도 간격이 있듯이, 그냥 우리 사이에 있는 그 이격을 존중하며 철로처럼 살기를 원한다. 그 간격은 내가 나를 돌아볼 수 있고, 네가 너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거리, 완충지대 같은 거니까.





떨어져 있는 철로를 침묵으로 이어주는 침목들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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