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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Nov 23. 2022

사진의 거짓말

# 사진처럼 거짓말을 잘하는 것도 없다.


나는 네가 비싸도 좋으니 거짓이 아니기를 바란다. 나는 네가 싸구려라도 좋으니 가짜가 아니기를 바란다. 만약 값비싼 거짓이거나 휘황찬란한 가짜라면, 나는 네가 나를 끝까지 속일 수 있기를 바란다.(정유희, '함부로 애틋하게' 중)



사진처럼,


거짓말을 잘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사진이 리얼리즘을 추구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사진은 절대로 있는 그대로를 담지 않는다. 아무것도 아닌 모습도 사진으로 찍으면 하나의 사건이 되고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사진은 사람의 슬픈 순간을 너무 아름답게 찍는다. 안에 있는 사람은 너무나 슬프고 아픈데. 사진을 보는 이들은 말한다, 야 아름답다, 멋진 사진이야, 예술이다 예술. 



왜,


실제로 보는 것보다 사진으로 보면 더 예쁘고 잘 나 보이는 것일까.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일상인데, 사진 속에서는 왜 특별해 보이는 걸까. 사진은 피사체에서 예쁜 속성 하나만을 보기 때문에 그렇다. 렌즈는 피사체의 좋은 점, 나쁜 점을 속속들이 다 담아내지 못한다. 한 순간, 찰나의 단면만을 잡아내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풍경사진은 대자연 속에서 아름다운 장면 하나에 집중한 결과이고, 아름다운 인물사진은 사람들 속에서 아름다운 표정 하나를 포착한 결과이다.



반면,


실제보다 이상하고 밉게 나온 사진도 있을 것이다. 그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피사체의 숨겨진 추한 속성을 렌즈가 포착하였기 때문이다. 같은 피사체를 찍은 여러 개의 사진을 종합해 보아야 여러 속성들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번 겪어봐야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인생에서 그런 여유는 제공되지 않는다. 우리는 한 컷의 사진들로 삶의 판단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슬픔 속에 기쁨이 들어 있고, 기쁨 속에 슬픔이 들어 있다. 서럽게 우는 중에도 잠깐의 웃음이 비치기도 한다. 크게 웃으면 눈물이 나오는 것처럼. 행복한 불행과 불행한 행복은 결국 같은 말이 아니던가. 



자, 


렌즈가 아니라 나의 눈으로 세상을 찍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예쁜 속성에 집중할 것인가, 추한 단면에 매달릴 것인가. 사진은 내가 보기 나름이다. 사진처럼 세상도 내가 보기 나름이다. 인생은 내가 하기 나름이다. 나는 사진처럼 내가 나를 끝까지 속여 주었으면 좋겠다. 휘황찬란하고 아름다운 것이 인생이라고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





2012년 겨울, 서울대공원 동물원 입구에서 세계 가면 전시회가 있었다. 하회탈 같은 우리나라의 가면도 함께 소개하고 있었다. 무료 전시였다. 그런데 내걸린 웃고 있는 가면들이 하나같이 슬퍼 보였다. 웃고 있는 가짜 얼굴 아래에서 울고 있는 진짜 얼굴이 그려져 마음이 불편했다. 그냥 드러난 모습 그대로 보면 될 것을. 웃고 있는 얼굴을 쓰고 있으면 웃고 있는 것인데. 보여주기 싫어 감춘 얼굴을 무엇 때문에 확인하려 하는 것인지. 사진을 시작하고 못된 버릇이 든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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