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판을 안내하다
인생의 하프라인을 넘기 전까지는 목표가 보이지만, 절반을 지나고 난 뒤부터는 목적이 보인다. 목표를 향한 걸음은 성급할지라도 목적을 향한 걸음은 느릴수록, 그리고 즐거울수록 좋다. (가와기타 요시노리, '중년수업' 중)
하프라인을 지난 지가 언제인데.
목적은커녕 목표도 보이지 않는다. 나의 걸음은 조급하고 마음은 초조하다. 이제는 골대가 눈에 들어 올 시점인데. 천천히 조금 느리게. 주변을 온전히 마음에 담으며 '아다지오, 아다지오'를 되뇌어 본다.
바쁜 일상 중 잠깐의 멈춤.
나는 하루 중 몇 개의 쉼표를 찍는지... 돌아본다. 또 무엇에 미친 듯이 빠져, 쉬지도 않고 내달리고 있지 않은지. 내가 나를 알기에 걱정이 앞선다. 옛날에는 국기 게양식과 하강식을 통해 하루에 두 번씩 전 국민에게 멈춤을 강제한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멈추게 했으면. 운전을 배울 때, 가장 쉬운 일은 달리는 것이고, 가장 어려운 일은 멈추는 것이었다. 고장 나 멈추는 것 말고, 쉼을 위해 멈추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망가진 차량의 견적서 없이는 자발적 멈춤에 대하여 인사부서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성의 법칙은 사는 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월요일 아침이면 로봇처럼 출근하고, 금요일 오후가 되면 '가정의 날' 노래를 들으며 생각 없이 퇴근하는 생활들. 정말 아무런 생각 없이 관성의 힘에 몸을 맡긴 채 흘러가고 있지 않은지. 그러다 고장 나 멈추지 말고, 더 망가지기 전에, 더 아프기 전에 멈추었으면.
무엇 때문에.
어디로 얼마만큼 더 달려야 하는지.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본다. 요즘, 나이에 비례하는 삶의 속도가 두렵다. 마흔에는 40이더니 쉰에는 50으로 달리고 있다. 이러다 아흔에는 90으로 날아가겠다. 무섭고 힘들어지기 전에 속도를 줄여야겠다. 길을 가다 보면 속도를 줄이라, 돌아가라는 등 여러 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낯선 길에서 만나는 화살표까지 곁들인 표지판은 감동이다. 초행인 인생길에 대하여, 요철을 조심하라, 천천히 가라, 어린이를 보호하라는 등 친절히 안내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저기, 60이란 숫자 위에 속도를 줄이면 사람이 보인다는 표지판이 보인다. 60세가 넘어가기 전에 삶의 속도를 줄이라고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60에 가까워지면 일을 보지 말고 사람을 보아야 한다고 친절히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아, 그 뒤에 작은 표지판도 보인다. 어린이보호구역은 30 이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30이 되기 전에 아이 낳고 잘 키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속도를 줄이고 어린이를 잘 보호하라고, 여기부터 속도를 줄이라고 또 한 번 강조하고 있다. 우리 제발, 표지판이 시키는 대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