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화에 대한 짧은 생각들
엄마는 날마다 나에게 전화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에게 전화했었니?"
내가 아니라고 대답하면, "바쁘지 않다면 내가 살아있는 동안 전화해 주렴."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전화를 끊으셨다. (에이미 봄벡)
이승에서 통화가 가능할 때 전화드리자. 이 일보다 급하고 바쁜 일은 없다. 아직 우리 현대 과학으로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통신망을 구축하지 못했으니.
낯선 전화
처음 보는 전화번호로 낯선 노크소리가 들릴 때, 우리는 통화의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때로는 낯선 사람이 아니어도 그렇다. 현관문구멍으로 상대를 확인하듯 액정화면을 힐끗 보곤, 노크소리를 그대로 방치하거나, 문을 잠가 버린다. 애초에 전화란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만든 물건이다. 휴대전화는 이동하면서 듣기 위함이고. 그런데 왜 그러는 걸까?
처음은 늘 힘이 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새롭게 나를 소개하고 상대를 파악해 내야 하는, 원치 않은 소개팅이 싫기 때문이다. 또 무엇으로 사람을 판단해야 하나 고민하는 것 자체가 싫어서일 수도 있다. 낯선 전화는, 낯선 사람과 낯선 용무로 익숙하지 않은 대화를 해야 하니까. 낯섦은 두려움을 동반하기도 하니까.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낯설었다. 낯섦으로 다가가 익숙함으로 친해지지 않았던가. 그리고 누구나 인생을 처음 산다. 우린 각자에게 낯선 사람이라는 것을 떠올려 보자. 세상 모든 일은 다 '처음'이다. 그래서 인생을 '처음'들의 나열이라 하는 것이다.
살면서 우리는 일을 처음 맡거나,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된다. 그럴 때, 우리의 선택은 명백하다. 처음이기 때문에 용기를 내서 맡아야 하고, 용기를 내어 만나야 한다. 우리는 처음 보는 낯선 전화번호를 떨리는 손으로 누르고, 통화의 문이 열리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신호음 혹은 낯선 컬러링 소리를 인내하고 들으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노크를 계속한다.
프로토타입 전화기
공중전화기를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컴퓨터를 스마트하게 줄여 손난로처럼 감싸고 다닌다. 제품명은 전화기인데, 실제로 전화기의 쓰임은 간헐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대의 전화기는 목소리를 통해 안부를 확인할 목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게 분명하다. 요즘은 목소리가 아닌 눈으로 사람의 생사를 확인하는 위험천만한 시대이다. SNS에 올리는 상대방의 게시물로 그의 생존을 믿는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 정도로 신뢰사회가 되었다는 것일까. 동의할 수 없다. 내 스마트폰의 기능 중 전화기의 용도는 10%도 되지 않는다. 당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더 이상 이 물건을 '전화기'라 부르지 말 것을 제안한다.
전화기의 원래 발명 목적은 목소리를 전하는 것이었다. 목소리를 통해 사람의 안부를 확인하는 용도였다. 우리가 익히 알듯이, 1876년 그레이엄 벨은 전화기 특허를 먼저 등록한 사람이다. 그보다 일찍 1871년 미국 과학자 안토니오 무치가 전화기를 발명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설들이 분분하다. 그러나 나는 애초에 전화기라는 발명품은, 소리의 미세한 진동과 템포 등으로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전하도록 설계되었다고 주장한다.
나의 가설은 안토니오 무치의 전화기 발명 이전에 만들어진 "전하기 프로토타입"이 그렇게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발명품을 '전하기'로 부르자는 것이다. 목소리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전하는 휴대용 전자기기로서 전파인증을 통과한 제품. 알다시피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다양하고 교묘하며 가증스럽고 위선적인가. 목소리를 통하지 않고는 진위를 절대 가려낼 수 없다. 살인범이 피살자의 전화기로 무사하다는 메시지를 가족들에게 보냈다는 뉴스를 듣는다. 또 갈수록 보이스피싱 피해는 증가하고 있다.
이 '전하기'에는 음성분석기술 칩을 내장하고 있다. 목소리 성분을 분석하여 진실성 척도를 액정에 나타내도록 되어 있다. 거짓말 탐지기 기능을 그대로 구현했다는 거다. 앱으로 구현되는 게 아니라 하드웨어적으로 기동시켜 95%의 신뢰도를 자랑한다. 임상실험 결과, 보이스피싱 99%, 사랑한다는 거짓고백 90%의 적중률을 나타냈다고 한다. 놀랍지 않은가. 이 '전하기'만 있으면 보이스피싱은 박멸될 것이고, 거짓 사랑고백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미국 일리노이 주에 있는 그리들리 전화기 박물관(Telephone Museum of Gridley) 방문 소감 리포트를 이렇게 적어 제출했다. '적절한 상상력을 가미할 것'이란 단서가 붙은 과제였다.
마지막 전화
만약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오늘이라면, 누구에게 마지막 전화를 거시겠습니까? 그리고 무슨 말을 하시겠습니까?
"너를 위해 살아주지 못했어. 정말 미안해."
전화기 든 손을 감싸 안으며, 나는 나에게 전화를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