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름살이 만들어지는 과정.
"사진작가 양반, 내 주름살 절대 지우지 말아요. 내가 이걸 만드느라 수십 년이 걸렸거든."
(잔느 모르 Jeanne Moreau, 전설적인 프랑스 여배우, 1928년생)
주름살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닐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었다고, 저절로 주름살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에게 주름살이 있다면 나무에게는 나이테가 있을 것이다. 아무 고난 없이 평탄한 인생을 사는 열대지방 나무는 나이테가 없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셀만한 나이는 많지 않은 것이다. 해가 바뀌면 저절로 나이를 먹는 줄 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추운 겨울을 인내하며 봄을 기다려도 보고, 여름 폭풍우처럼 성장하다가 한순간에 가을 낙엽처럼 추락도 해보고, 그 차디찬 바닥에서 노숙도 해보고. 그런 세월의 우여곡절을 세포막에 담고 있는 것이 나이테인 것이다. 주름살 역시 나이테처럼 절실한 삶의 굴곡을 담고 있는 마음의 울타리란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나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나무처럼 인생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바람에 맞서면,
물결이 생기듯, 세월에 저항하면 주름살이 생긴다. 불의에 굴종하지 않고 얼마나 치열하게 인생을 살았는지, 그것의 척도가 바로 주름살이 아닐까. 바람 부는 대로 세월 흐르는 대로 순응하며, 곱게 늙은 모습이 좋아 보이긴 하지만, 나는 가문 논바닥과 굴곡진 밭이랑 같은 척박한 주름살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려고 평생 가난과 차별에 맞선 그분들의 주름살을 생각한다. 그리고 묻는다. 우리는 얼마나 세월에 저항하고 있는지. 어떻게 주름살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늙는다는 것,
나이는 무엇으로 말해야 할까? 화가는 자기 그림이 제 나이고, 시인은 자기 시가 제 나이고, 시나리오 작가는 자기 영화가 제 나이다. 바보들만 자기 동맥이 제 나이다... 밥장 작가의 <밤의 인문학>에 나오는 문장이다. 내 나이는 무엇으로 말해야 하나 생각하니, 갑자기 먹먹해진다. 오후 여섯 시에 가까워지고 있는 나의 시계가 퇴근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왔을까. 어떻게 나의 주름살을 만들어왔을까. 바보처럼 늙은 동맥이 내 나이라 말해야 할까? 동맥 속을 뜨겁게 흐르던, 청춘의 열정은 다 어디로 흘러갔는지. 세월이 다시 흐른 뒤에 또 누가 묻는다면, "이것이 나의 나이요!"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정신 차리고 늙어야겠다.
힘든 시간을
겪어야 힘이 생긴다는 말...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 단절된 관계, 멈춰버린 사랑, 줄어든 보폭, 늘어진 결심... 이런 것들로 힘들어하고 있다면, 기꺼이 힘들어 하자. 많이 힘들수록 많은 힘을 낼 수 있을 테니. 봄꽃들도 힘든 겨울을 동력 삼아 꽃을 피우지 않던가. 사람도 나무도 춥고 어두운 시간을 지나야, 제 나이에 테를 두르는 것이다. 사람의 나이테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