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구독자
그 어떤 사람도 일기장에 백 퍼센트 진실만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인간은 일기를 쓰면서도 누군가 일기장을 읽어보리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기 마련이다. (최인호,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중)
정말 그랬다.
일기만큼은 나 자신에게 솔직하게 고백하는 내용으로 쓰려고 했다. 일기만큼은 가식적이거나, 가면을 쓰거나, 억지로 화장을 하거나, 행복한 척하지 않으려고 했다. 솔직하고 순수하게 의식의 흐름을 따라 무슨 말이든 떠오르는 그대로 적으려고 했다. 실제로 나의 세상에서 발생한 사실과 진실만을 쓰려고 했다. 그것이 나의 정체를 드러내 정체성을 찾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유년의 시절부터 일기장을 타인에게 검사받는 과정을 거치면서, 글이란 언젠가 읽게 될 누군가를 의식하며 쓰는 것으로 학습되어 왔다. 그 독자의 마음을 배려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사실과 진실이 때로는 허구와 거짓 보다도 사람을 아프게 한다는 걸 알아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꾸며진 글로 채운 일기장에 '참 잘했어요' 스탬프가 잔뜩 찍혀 있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아무도 일기장을 검사하지 않지만, 쓴 글을 나 스스로 브런치에 올린다. 마치 일기를 검사받는 것처럼. 그리고 글들은 오늘 하루에 대한 일기가 아니라 나의 평생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되새김이다. 일기를 시작하던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가식적이거나, 가면을 쓰거나, 억지로 화장을 하거나, 행복한 척하지 않는 글을 쓰리라 다짐한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문정희 작가의 말처럼 나도 이젠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가끔씩 내 글의 이유를 생각한다.
한평생 살아오면서 힘들고 아팠던 일들과 그럴 때 힘이 되었던 생각들, 그것들을 사진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바람이 아니었던가. 이야기된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는 말을 믿지 않았던가. 진정한 위로와 응원은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지금도 믿는다. 그리고 나는 나의 글들이 제 목적을 달성하고는 미련 없이 잊히기를 소망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나의 글을 읽게 될 특정되지 않는 독자의 범주 속에 '나'를 포함시켜서 글을 쓰고 있다. 내가, 내가 쓴 글을 몇 번이고 읽어 주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때로는 지그시 눈을 감거나 눈물을 훔치는지. 그렇다. 내게 가장 신경 쓰이는 독자는 바로, 세월이 흐른 후의 '나'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찐 구독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