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씀 Aug 04. 2022

무엇이 있던 자리

# 내가 머물던 자리에 무엇이 남았을까?


무엇이 있다가 사라진 자리는 적막이 가득하다. 절이 있던 터, 연못이 있던 자리, 사람이 앉아 있던 자리, 꽃이 머물다 간 자리, 고요함의 현현. 무엇이 있다 사라진 자리는 바라볼 수 없는 고요로 바글거린다. (조용미, '자리' 중)



내가 있던


자리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적막이나 고요가 바글거릴까. 나는 그 자리에 무엇이 남아 있기를 바라는 걸까. 있는 동안이나 내 자리이지, 떠난 후에는 나의 자리가 아닌 것을. 욕심과 미련을 떼어내지 못하고, 자리를 들고 떠나온 사람을 본다. 참 어리석다. 무엇이 있던 자리에는 무엇이든 남는 것이다. 그것이 적막이든 공허든 무엇으로든 채워지는 것이지, 빈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있던 자리에 다른 누군가가 앉아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릇처럼 자리는 그대로이나 점유물은 계속 바뀐다는 말이다. 그러니 내가 가졌던 명예나, 직함, 호칭 그리고 기록으로 존재하는 계급 따위에 연연하지 말라는 것이다.



장미의 향기는,


그 꽃을 준 손에 항상 머물러 있는 거라 했다. 나는 그냥 내가 머문 자리에 향기가 남았으면 좋겠다. 같이 있을 땐 미처 알지 못했던 그리움의 향기가, 떠난 자리에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영원히'나 '오래도록'이 아니라 잠시 동안만. 그렇게 잔향이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게 그리 쉬울까? '못'이란 글자는 사람을 닮았다. 나는 그 이유를, 사람이 있던 자리에는 상처가 남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못이 있던 자리에 자국이 남듯이. 나는 내가 있던 자리에 어떤 형태로든 상처가 남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향기도, 상처도, 아무것도 남지 않기를 소망한다. 그냥 내 자리에는 적막과 고요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식물의 미덕은,


자기 자리에 머무는 것이고, 동물의 미덕은 자기 영역을 지키는 것이며, 인간의 미덕은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라 한다. 김은주 작가가 그렇게 말했다. 인간이 두 발로 걷는 이유는 자기의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서라는데, 나는 내 자리를 찾았을까? 그리하여 동물처럼 네 발로 내 영역을 굳건히 지키다가, 마침내 식물처럼 깊은 뿌리내려 그 자리에 머물렀던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자리를 찾아 세상을 떠돌고 있는 중일까? 혹시 허겁지겁 세월에 쫓겨, 내 자리가 아닌 곳에 뿌리내리지는 않았는지, 이른 아침에 걱정이 늘어진다.



선운사 초입,


처음 보는 카페에 들어갔었다. 어? 분명 저 창가에 앉아본 적이 없는데, 그 자리가 낯설지 않다. 그 사람과 차를 마시던 익숙한 추억이 떠오른다. 나는 추억이라 하지만 그 사람은 기억이라 할 수도 있겠다. 둘 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인데, 추억은 좋은 느낌이, 기억은 덜 좋은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일까. 기억력이 좋다는 말은 있어도, 추억력이 좋다는 말은 없는 것으로 유추할 때, 기억은 생각해 내는 것이고 추억은 생각나는 것 같다. 지금 이 시간도 1분 후면 기억이 되거나 추억이 될 것이다. 만약 그 사람과 내가 머물던 자리에 무엇을 남겨야 한다면, 추억을 남겼으면 한다. 힘들 때 우리는, 추억 속에서 희망을 찾기 때문이다. 희망은 추억의 다른 얼굴이다. 누군가 내가 있던 자리에서 추억을 찾아냈으면 좋겠다.





선운사 초입 커피숍에 들어서자, 누군가 머물렀던 자리에 그들의 향기와 추억이 바글거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잘못된 잘못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