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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Sep 08. 2022

불 안에서, 불안해서

# 불 안을 견디면 그릇이 만들어진다.


불안이 심해진다. 자꾸 놀라고 쓸데없는 일들에 생각을 빼앗긴다. 스스로의 어리석음이 낙담스럽다. 그래도 결국 지나갈 거라는 걸 안다. 조용한 날들이 돌아올 거라는 걸 안다.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중)



아무 이유도 없이 사는 일이 불안했던 때였다. 


월요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던 시기였다. 어디라고 정하지도 않고 낯선 곳으로만 여행을 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우리는 옥천요에 들리게 되었다. 마침 가마에 불을 넣고 있었다. 가스가마나 전기가마가 대세인 요즘 장작가마라니.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그것도 3년간 건조한 소나무만 땐다고 했다. 도예가는 어떻게 가마 불 때는 시간에 딱 맞춰 왔냐며, 우리가 예사롭지 않다 말했다. 벌겋게 달아오른 가마 안에서 재벌구이를 거치며 그릇이 완성되고 있었다. 



보는 우리도 벌겋게 달아올랐다. 


가마 불 안에서 그릇들이 태어나고 있어요, 라고 아내가 말한다. 섭씨 1,200도 이상의 뜨거운 불 안을 견디면, 덕지덕지 흙덩이 민낯을 태우고 나면, 때깔 나는 도자기가 되는 거지, 라고 내가 말한다. 불 안에서, 불안에서 벗어나야 당찬 그릇처럼 살 수 있다고 그럴싸하게 말한다. 도자기 탐방을 좋아하는 아내는 불 안을 들여다보며 가마를 떠날 줄 모른다. 텃밭에 물레를 설치하고 전기가마 하나 들이는 게 소원이라 했던 말이 생각난다. 기다려 봐, 불안과 걱정 나부랭이 다 털어내면 소원 들어줄게, 라고 내가 말한다. 언제 옛날로 돌아올 건데..., 라고 말하려다, 그냥 도자기 만들 때가 나는 제일 행복해, 라고 아내가 말한다. 불안은 불 안처럼 주변을 볼 경황이 없고, 아무도 믿지 못하고, 그래서 힘든 건지 모른다. 


옥천요를 나와 산길을 걸어 내려오며, 우리도 이제 불안에서 빠져나왔기를 소망한다.





불 안에서 불안을 떨쳐야 그릇이 만들어진다. 흔치 않은 장작가마 그릇이니 꼭 갖고 싶다고 아내가 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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