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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Oct 13. 2022

그 사람 뒤에 그 사람

# 뒷모습이 말하는 것들.


방황하는 청년 뒤에는 불안하고 힘든 소년이 있고, 짜증 내는 중년의 남편 뒤에는 위로받고 싶은 약한 남자가 있다. 누군가 미워하는 마음속에는 왜곡된 부러움이 담겨있고, 냉소적인 사람 속에는 사랑받고 싶은 영혼이 숨죽이고 있다. (김미라, '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 중)



살면서,


사람의 뒤편을 볼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그의 뒤편을 감싸 안는 일이라고. 사람들은 뒤편에 슬픈 것이 많아서 그렇다고 누가 그랬다. 그래,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신문을 보며 행간을 읽을 줄 알아야 하듯, 음식 속에 담겨 있는 마음을 맛볼 줄 알아야 하는 것처럼. 누군가 우리 앞에서 큰소리를 낼 때에도 그 뒤에 감춰진 도와 달라는 외침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대개 사람들은 간절한 소망을 뒤편에 감추고, 정반대의 말투로 공격하거나 침묵한다. 그것이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 구사할 수 있는 최선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앞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자. 그 사람 뒤에도 그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사람을 사랑할 때는 앞모습보다 뒷모습을 더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내게는 그런 넉넉한 마음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직


멀었다. 그 사람 뒤에 있는 진짜 그 사람을 만나려면. 그에게서 불안과 짜증과 미움밖에 볼 줄 모르니. 같이 산 세월이 얼만데 아직도 그 사람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다니. 나는 그저 보이는 것만 사랑했다. 미소 짓는 그 사람의 앞모습을 사랑하고, 다감하고 평화로워 보였던 앞모습을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사람의 뒷모습이 낯설다는 걸 깨달았다. 앞모습은 분명 그 사람인데, 뒷모습은 어찌하여 애잔해 보이는 걸까. 이기적이게도 내가 보고 싶은 모습만 보았기 때문이리라. 이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 등 뒤로 숨어버린 아이의 모습과 한 번도 불러주지 못한 그의 이름을 사랑하고, 충분히 지지해주지 못했던 그의 어깨를 내 두 팔로 감싸 안을 것이다. 보이지 않거나 보여주지 않았거나, 혹은 보지 않았지만 언제나 그렇게 있어 온 것들을 사랑할 것이다. 돌아 앉은 그 사람이 침묵으로 외치는 구조요청을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좀처럼 보여주지 않았던 그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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