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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Oct 17. 2022

적당한 거리

# 적당한 마음의 이격에 대하여.


너무 멀리 있으면 볼 수가 없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보이지가 않는다. 적당한 거리만이 서로를 제대로 보게 한다. 하지만 그 ‘적당한 거리’란 것은 언제나 ‘멀리’나 ‘가까이’보다 취하기 힘든 거리이다. (박주영, ‘무정부주의자들의 그림책’ 중)



적당한 거리는,


사진을 찍을 때와 비슷하다. 피사체가 너무 멀리 있으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적당한 거리에서 초점이 잡혀야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살면서, 멀리도 아니고 가까이도 아닌 이 적당한 거리를 취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6~7년 전일 것이다. 세종이라는 특별한 시골로 강제 이주한 뒤, 다시 잠깐 동안 서울살이를 한 적이 있었다. 서울역 앞에 소재한 기관에서 1년 동안 파견 근무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복학한 아들의 자취방 용도로 얻어 놓은 9평 남짓, 늙고 왜소한 아파트에 덩치 큰 두 남자를 내려놓고, 아내는 미련 없이 떠났다. 혼자 있고 싶던 아들은 못마땅한 시선을 불청객 아비에게 보내고 있었고. 그동안 출장은 많았지만 아내와의 공식적인 이별은 처음이다. 그러고 보니 다툼은 잦았지만 서로 떨어져 있어 본 적은 없었다, 놀-랍-게-도. 잠시 아내와 떨어져 있으면서, 우리가 가까이 있어서 보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 우리의 '적당한 거리'는 어디쯤인지 찾아보리라 마음먹었다. 누군가의 부재는 웃으며 왔다 울며 가는 법인데, 지금 아내는 웃고 있겠지. 



세상 일과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두는 연습을 통해 적당한 거리를 알아냈으면 좋겠다. 가깝다는 것은 거리를 줄이는 게 아니라, 극복하는 거라고 했다. 나는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부부를 볼 때마다 그들의 험난했을 극복의 세월을 떠올린다. 그리고 성장환경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로 수반되는 숱한 오해와 불신을 다 감당해 낸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사진도 비슷하다. 숨을 참고 인내하면서 조리개를 조이다 보면, 마침내 두 개의 상이 하나로 일치하는 순간이 온다. 그때가 바로 사진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같이 살거나, 같이 일하는 사람과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할 일은 어떻게 하면 거리를 극복하고 적당한 간격을 찾아낼 것인지, 어떻게 한 장의 멋진 사진을 남길 것인지 고민하고 노력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처럼 적당한 거리를 고민하며 어떤 부부가 산을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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