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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Oct 06. 2022

연잎의 욕심

# 연잎에게 배우는 욕심 사용법.


우리의 선조들은 13세기까지 설탕 없이 생활했다. 14세기까지는 석탄이 없었고, 우유, 달걀, 밀가루 따위로 반죽해서 만든 빵은 15세기에도 없었다. 감자는 16세기까지도 없었으며, 커피, 차, 수프는 17세기, 푸딩은 18세기, 성냥, 전기는 19세기까지 볼 수 없던 것들이었다. 그리고 통조림은 20세기가 되어서야 나온 상품이었다. 더구나 기차, 자동차, 비행기는 언제부터 등장했는가. 자! 그런데 우리는 지금 무슨 불평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외수, '흐린 세상 건너기' 중)



사람은


욕심이 많을수록 둔해지고 무거워진다. 욕심도 질량이 있기 때문이다. 적게 가진 사람보다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욕심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한 법이다. 가지려는 욕심에 가진 것을 놓지 않으려는 욕심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심하자. 우리가 가지고 싶어 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얼마 전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없었어도 아무렇지 않았다는 것을.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하여 마음 쓰기보다 가진 것에 대하여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충족이 아니라 결핍이라는 것을. 

 


연잎을


구르는 물방울을 보라. 연잎은 자신이 감당할 만큼 물방울을 담고 있다가 금세 털어버린다. 생존의 내력이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욕심을 담으려 하면 부러진다는 것을 체득한 것이다. 그릇에 물이나 술을 채우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술잔에 7부 능선 이상으로 술을 채우면 버겁다. 정이 넘쳐야 한다고 잔을 넘치게 따르면 정이 아니라, 원망만 넘쳤던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마음도 그렇고 일도 그렇다. 그 사람이 좋다고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가면 움찔, 놀라 뒤로 물러서는 게 사람이다. 좋을수록 사랑할수록 거리를 남겨 놓을 필요가 있다. 일하는 것도 자기 능력의 7할이 적당하다. 혼신을 다해, 죽을 정도로 100%나 그 이상으로 쌔빠지게 일하면, 정말로 죽는다.



욕심을


버리라는 말은, 욕심을 없애라는 말이 아니다. 이는 욕심을 가지라는 말로, '욕심의 방향을 고치라'는 말이라 한다. 법구경에 나오는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욕심을 버리자, 마음을 비우자, 이렇게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기만 했을 뿐, 욕심의 방향은 생각조차 못했다. 욕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얼마 큼의 욕심인지는 알 것 같다. 연잎에게 배웠다. 그리고 욕심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는 것도 이해했다. 나를 위한 욕심의 방향을 모두를 위한 쪽으로 틀고, 감당할 만큼의 기분 좋은 욕심을 가지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지나친 욕심은 연잎의 물방울처럼 털어 버리라는 것이다.





무엇이든 무거우면 내려놓아라 미련하게 들고 있지 마라, 백련지 연잎이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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