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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Oct 28. 2022

경쟁에 대한 오해

# 경쟁은 다른 사람들과 하는 것이 아니다.


선배는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커다란 종이를 가지고 와서 그 위에 직선 하나를 그렸다.

 "지우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을 써서 이 선을 짧아지게 해 봐."

그녀는 선배가 무슨 뚱딴지같은 요구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종이의 선을 바라보았지만, 선을 지우지 않고 짧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 같았다.

 "모르겠어요. 그게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요?"

선배는 다시 빙그레 웃고는 볼펜을 집었다. 그리고 원래 그렸던 선 옆에 그보다 더욱 기다란 선을 하나 그렸다. 옆에 긴 선이 생기자, 과연 원래의 선이 훨씬 짧아 보였다.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이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는 것만 있는 게 아니야. 방금 기다란 선이 하나 생기니까 기존의 선이 상대적으로 짧아졌지? 상대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낮은 차원의 성공 방법이라면, 더욱 궁극적인 방법은 네가 상대보다 더 강해지는 것이지. 상대는 잊어도 돼. 스스로 강해져야 해. 그러면 상대는 네 앞에서 짧은 선이 되고 말 거야."

 (무무, '오늘 뺄셈' 중) 



사람을


누르면 누른 사람도 낮아지지,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면 그도 일어서는 것처럼. 그래, 경쟁에서 이긴다는 건 상대를 무력화하는 방법만 있는 게 아닐 것이다. 경쟁의 목적은 모든 참여자의 수준을 향상하기 위함이고. 능력이 떨어지는 참여자를 끌어내려 퇴출시키자는 것이 아닐 것이다. 모든 평가시스템은 상향 평준화를 도모하는 것이지, 하향 평준화를 이루려 하는 것이 아니듯. 경쟁은 다른 사람과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경쟁에 대한 오해는 바로 이것이다. 목표 수준을 정하고 나 자신과 벌이는 끊임없는 다툼, 사람은 이러한 경쟁 속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바둑을


두다 보면 내가 잘못 두어서 무너지는 경우가 많지, 상대방이 잘 두어서 지는 경우는 드물다. 조훈현 국수가 한 말이다. 그래서 경기의 승패는 '자신과의 싸움'에 달려 있다고 하는 거겠지. 실수하지 않고 생각한 대로 종국까지 신중하게 돌을 놓아 가는 것. 인생에서 돌 하나를 놓는 행동은 내 안에 있는 무수한 '나'와 싸운 결과이다. 의견이 다르고, 방향이 다르고, 용기의 크기도 다른 수많은 나를 이겨내야 가능한 일이다. 사는 일도 바둑처럼 상대방이 잘해서 지는 게 아니라, 내가 못해서 지는 것이다. 최고의 경쟁상대가 나 밖에 없을 때까지 정진해야겠다.



산행에서도


경쟁을 배운다. 우리는 정상에 이를 때까지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뒤에 오던 사람이 나를 앞질러 가기도 하고, 내가 다른 사람을 앞질러 가기도 한다. 그러나 산에서 속도의 경쟁에 내몰릴 필요는 없다. 정상까지 나만의 보폭으로 꾸준히 오르면 되는 것이다. 뒷사람이 나를 앞질러 간들, 내가 좀 뒤처진들 뭐 어떠랴. 고작 산행일 뿐인데. 먼저 오른 사람은 먼저 내려가겠지. 나만의 속도를 갖자. 힘들면 쉬었다가 또 오르고, 굳이 정상에서 오래 머물 이유도 없는 거다. 해 지기 전에 산을 내려가야 하니까. 결국 경쟁은 남과 벌이는 것도, 속도를 다투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나만의 속도를 고수하려는 결심일 뿐이다. 이 세상 유일한 경쟁상대는 나 자신밖에 없다는 자만감으로 살자. 자기가 길다고 생각하는 짧은 선들에게 한마디, 길고 짧은 건 대봐야 하는 거라고!





새벽 비자림 길, 바쁜 사람이 탄 차들이 경쟁하듯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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