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을 완성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기억이 ‘녹화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녹화된 내용을 메모리에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면 그 전체를 끄집어내는 것이 기억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기억은 그런 것이 아니다. 기억은 오히려 사진과 비슷하다. 우리 머릿속엔 드문드문 찍힌 사진과 같은 몇 장의 이미지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해 기억하고자 할 때는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공백을 추측해 채워 넣어야 한다. 이렇게 우리의 추측을 통해 만들어진 이야기, 이것이 바로 기억이다. (정재윤, '14살에 시작하는 처음 심리학' 중)
우리가 기억하지 못할 뿐이지,
어쩌면 지구에서의 삶이 두 번째 혹은 세 번째인지 모른다. 하긴 전에 살던 혹성의 일을 기억한다면 이렇게 살진 않겠지. 착각 기억이든 기억력 착각이든 뭐라도 좋다. 지금 이 삶이 두 번째라 생각하기로 하자. 전에도 여러 번 넘어져 봤잖아, 별거 아니야. 툭툭 털고 일어나면 돼. 여기보다 더한 것도 겪었잖아. 기억나지 않아도 분명 그랬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면 사는 일이 조금은 위안이 되고 힘이 나지 않을까.
음 지난번 혹성의 기억은 아니지만,
내가 가진 최초의 기억은 세 살 때 기억이다. 나는 세 살 터울의 동생이 태어나던 날을 분명히 기억한다. 산비탈 슬레이트집 안방에서 엄마가 동생을 낳던 그 무서운 광경이 지금도 눈과 귀에 선명하다. 엄마가 어떻게 될까 봐 무서움에 떨며 목청껏 우는 나를, 외할머니가 괜찮다, 아무 일 아니라고 달래 주었다. 달콤한 사탕인지 엿인지 모를 무언가를 손에 쥐어 주었다. 내가 추측하여 만들어 낸 기억이 섞여 있을 수 있지만, 그날의 부산하고 무서웠던 광경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동생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심장이 총알로 뚫렸을 때? 아니 불치병에 걸렸을 때? 아니 맹독 버섯 수프를 마셨을 때? 아니... 사람들에게서 잊혔을 때다. 유명한 애니 '원피스'에 나오는 말이다. 그래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잊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좋은 이름으로 기억되어 '살아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그래 움직여야 한다. 몸을 움직여야 마음이 움직이는 법이다. 기억은 기억하지 않으면 부패하는 법이다. 썩어서 망각 속으로 소멸하는 것이다. 자꾸만 기억을 끄집어내어 이야기로 써 내려가야 한다. 나는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기억해 내려 애쓴다. 사진 속에는 당시의 이야기가 박제되어 있으므로. 세상 모든 것들은 이야기로 만들어졌으니까. 단지 우리가 그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할 뿐. 아니 기억되어 있으나 추측하지 않았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