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리 낮아도 정상은 정상이다.
어떤 분야든, 한 분야에서 정상에 오른 사람은 어느 정도 세상 이치에 통달한 모습을 보여준다. 정상에서 보면 다른 정상으로 올라오는 길도 보인다. (성석제, '왕을 찾아서' 중)
울적해서
뒷 산에 올랐다가 암벽 등반하는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높은 산도 아니고 기껏해야 동산에 불과한데 암벽등반이라니 가당치 않은 광경이었습니다. 프로의 솜씨는 아닌 듯했고, 그렇다고 생초보로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높지 않은 암벽을 로프에 매달린 채, 올랐다 떨어졌다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저러다 오늘 해 떨어지기 전에 성공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정상을 오르려는 굳은 의지를 보고 있자니, 작은 실패에 의기소침해 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저 암벽을 탓할 순 없는 겁니다. 암벽은 나의 등반을 돕고 있을 뿐이고,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실패는 등반을 포기하고 지상으로 내려가는 것이지, 바둥바둥 줄에 매달려 숨을 내쉬는 건 실패가 아닌 겁니다. 인생 살다 보면 암벽 같은 만남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암벽을 타고 넘어 정상에 오르는 것이 이번 등반의 목적임을 깨달았습니다.
분명
산 정상에 오르면 아래에서 볼 수 없었던 길들이 보입니다. 그리 높지 않아도 정상에 서 본 사람과 산중턱에서 돌아 간 사람은 세상을 보는 시야가 다릅니다. 이건 확실합니다. 아무리 보잘것없어도 정상에 올라본 사람은 또 다른 정상을 결심하게 되지만, 한 두 번의 좌절에 산을 내려간 사람은 그 정상 너머를 꿈꾸지 못하는 것입니다. 산행에서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정상까지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중력을 거슬러 오르는 일이 어디 쉽습니까. 다들 넘어지고, 부딪치고, 시기와 상처를 받으며 한 걸음씩 참고 오르는 것입니다. 부디 뒷동산 같은 낮은 오름이라도, 한 번은 정상에 올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더 높은 정상을 마음에 품을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