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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Jun 30. 2023

3년 묵은 쑥을 찾아서

# 행복의 신이 떠났다.


20대 초반 젊은이가 급하게 길을 가고 있었다. 그는 길가 풍경이나 지나가는 사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그를 막아서고 물었다. 

"젊은이, 뭐가 그렇게 바쁘오?" 

젊은 사람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가며 대충 대답을 했다. 

"가로막지 말아요. 저는 행복을 찾는 중입니다." 

순식간에 20년이 지나갔다. 젊은이는 이미 중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길가에서 달리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또다시 그를 가로막았다. 

"어이, 이봐요. 뭐가 그렇게 바쁩니까?" 
"방해하지 말아요. 저는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다시 20년이 흘렀다. 그는 이제 노안으로 앞이 침침한 초라한 노인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앞으로 걸음을 옮기려 발버둥 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그를 붙잡고 물었다. 

"노인 양반, 아직도 당신의 행복을 찾고 있소?" 
"그렇소."

대답을 하던 노인은 돌연 무언가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 그에게 질문을 한 사람은 행복의 신이었다. 그가 평생을 찾은 행복의 신은 바로 그의 옆에 있었던 것이다. 

(장지엔펑, '인생의 지혜가 담긴 111가지 이야기' 중)



행복의 신 이야기를 읽고, 


'어? 이거?' 하며, 곧바로 <3년 묵은 쑥(三年之艾)>이 떠올렸다. 다시 찾아보니 전주 매일신문에 실렸던 이야기다. 어느 효성 지극한 아들이 병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지나가던 스님이 '3년 묵은 쑥'을 다려 드리면 병이 낫는다고 일러 주었다. 아들은 그 길로 3년 묵은 쑥을 찾으러 길을 떠났다. 그러나 쑥은 1년생 풀이라서 3년 된 쑥을 찾기는 쉽지 않았고, 전국을 떠돌아다닌 지 7년째 되던 해, 홀어머니는 병세가 악화되어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다.



어리석은 아들이다. 


효성만 지극하면 무엇하나.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옆에 있는 것을. 만약 아들이 3년 묵은 쑥을 찾을 것이 아니라 지천에 널린 쑥을 뜯어 3년간 말렸다면, 아니 쑥은 상관없다. 그냥 병든 어머니 곁에 있어 주기만 했더라면, 어머니는 더 오래 행복했을 것이다.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다, 행복하지 않은 7년을 끝으로 그렇게 마감하진 않았을 것이다. 행복의 신이나 3년 묵은 쑥은 절대 멀리 있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지금 내 옆에 있는 것임을.



"어이, 이봐요. 뭐가 그렇게 바쁜가요?"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 들리는 것 같아 걸음 멈추고 돌아본다. 혹시 행복의 신이 아닌지 살펴본다. 그러게, 뭐가 그리 바쁜 걸까. 생각해 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데 서두르는 나를 본다. 지하철 환승 때마다, 이유를 모른 채 사람들을 따라 뛰고 있는 나를 본다. 뛰면 뛸수록 여기 있는 행복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내 옆에서 웃고 있는 행복의 신을 몰라보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자.





세상을 한 바퀴 돌아 출발지점으로 돌아오니 거기 행복이 웃고 있었다. 고생했어, 어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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