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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Apr 14. 2023

두 개의 우산

# 우산의 정체


"그냥 어떤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비가 오는 날 그 남자를 만났는데 남자가 가게에서 우산을 두 개 사 오더래."

"......"

"그것이 그렇게 슬프더래."

(신경숙, '깊은 슬픔' 중) 



지나친 배려는 거리감을 만든다. 


거리감은 말 그대로, 어떤 대상과 일정한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고 느끼는 감정이다. 마음과 마음의 이격에 대한 슬픔이다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것인데.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어도 같은 곳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겠다는 결심인데. 그 사람의 지나친 배려가 슬플 때가 있다. 따로 쓴 우산으로 비 맞지 않는 것보다, 때로는 가난한 우산 하나로 서로의 어깨를 적시고 싶은 거다. 속세의 빗 속에서 사랑에 젖고 싶은 거다. 아마도 우산 같은 사람이 그리웠던 것이다.



우산과 사람은 눈물을 아래로 흘린다.


우산과 사람은 둘 다 울기 위해 만들어진 경사면을 갖고 있다. 우산은 눈물을 참지 못하는 반면에, 사람은 흐르는 눈물을 어느 정도 참을 수 있다. 자기가 남자라고 인식하거나, 어른이라고 생각할 때 등이다. 하지만 힘들게 코를 잡으면서까지 눈물을 참을 필요가 있을까. 맑은 날만 계속되면 세상은 사막이 된다는 말이 있다. 사람도 맑은 날만 쫓으면 사막처럼 각박해진다. 그래서 사람은 가끔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울면 갈라진 가슴에, 논바닥 같은 마음에 비가 내린다. 나는 비 오는 날에 감사한다. 불편하지 않게 눈물 흘릴 수 있어 좋다. 그리고 행복이 계속되지 않도록 찾아 잔잔한 불행에 대하여 감사한다. 부스스 비가 흩뿌린다.



비 내리는 버스 정류장에서.


우산을 챙겨 가지 않은 딸아이를 기다리며 아파트 앞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여러 대의 학원 버스가 멈출 때마다 목을 내밀곤 하다가, 고작 십여 분의 기다림이 딸아이를 향한 짜증으로 바뀌는 순간. 아, 나는 아직 멀었다. 어머니의 그 마음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 어머니가 비에 젖은 손으로 건넸던 그 품 속의 떡. 부모 마음의 교과서. 도대체 나는 뭘 배웠단 말인가.


어머니께서 비를 흠뻑 맞고 집에 오셨다. 깜짝 놀라 맞으니 손에 우산이 들려있지 않은가.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며, 접어진 우산 속에서 종이에 싼 것을 먹어 보라며 내미신다. 떡이었다. 비에 젖지 않게 그것을 우산으로 가리고 당신은 흠뻑 비를 맞고 오신 것이다. (정채봉) 


주르륵... 양손에 우산을 든 눈에서 빗물이 흐르고. 몰래 눈물을 훔치는 내 우산 속으로 딸아이가 웃으며 들어섰다. 비 오는 날은 아버지와 남편들이 울기 좋은 날. 버스 정류장에는 아직도 비가 내리고.





버스가 비를 태우고 우산이 기다리는 정류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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