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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Aug 28. 2023

사람의 더듬이

#  '손'이 들어 있는 글들


손가락에 상처가 나면 손을 움직일 때마다 아픔이 전해 온다. 그제야 손을 움직이는 순간이 이렇게 많았구나, 깨닫게 된다. 사랑에 상처가 나면 그냥 걷기만 하는데도 아픔이 느껴진다. 그제야 숨 쉬는 모든 순간 넌 나와 함께였구나, 깨닫게 된다. (김은주, '달팽이 안에 달' 중)



사람의 더듬이


우리가 손을 움직이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나 역시 잠시도 손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그래서 혼도 많이 났었다. 어쩌면 사람의 손은 '더듬이'가 아닐까? 애초에 곤충의 더듬이로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손은 모든 감각기관의 센서들이 모여 있는 곳이고, 사람은 손을 통해 상대의 감정을 파악하는 것이다. 사랑을 확인하는 연인들의 스킨십도 반드시 손으로부터 시작하는 걸 보면 틀림없다. 손은 진실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감각기관인 것이다. 손의 소중함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늘 함께 하면서도 소중함을 잊고 있는 이런 것들처럼. 출장 중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켜주는 사무실 내 의자, 자꾸만 투덜대는 옆자리 선임, 술 취하면 무한루프에 빠지는 후배의 넋두리, 출근하는 아침이면 현관 앞까지 추격해 오는 아내의 망고주스.



빈 손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듯이, 태어날 때 갖고 온 그대로 돌아가야 한다. 따라서 떠날 때의 내 손도 빈손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 맞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누구하고 손을 잡는 것이다. 잡은 손의 따사로움을 기억하며, 그 따사로움을 전하며 사는 일일 것이다. 그 사람이 떠난 뒤에는 손을 잡아 줄 수가 없다. 내 손이 따뜻하지 않으면 어떤가. 차가운 두 손이 만나면 얼마나 더 위로가 될 것인가. 무엇을 들고 있지 않으면 또 어떤가. 비어 있어야 두 사람의 손으로 꽉 채울 수 있지 않겠나. 가끔은 서운하거나 얄밉기도 하겠지만, 손 잡을 수 있는 거리에 그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지금 내 옆을 묵묵히 지켜주는 그 사람에게 후회 없는 내가 되자.



손으로 듣기


아이가 감정이 폭발해서 "엄마 미워." "바보 같아."라고 외칠 때, 화를 내는 대신 차분하게 "정말로 말하고 싶은 게 그거야?"라고 물어보면, 아이는 멋쩍은 듯 웃으며, "꼭 그렇진 않아."라고 대답할 가능성이 크다. 메리 커신카의 <아이와의 기싸움>에 나오는 글이다. 그런 것 같다. '감정'이란 나의 상태를 누가 알아 달라는 의사표시이다. 따라서 누군가 그걸 알아주기만 하면 감정은 소멸한다. 네가 지금 화가 났구나. 많이 속상하겠다. 이렇게 아이의 상태를 인정해 주는 순간, 감정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그냥 들어주기... 경청, 즉 '들어준다'는 것은 '귀로 듣기'와 '손으로 들어주기' 그리고 '마음으로 덜어 주기'를 포함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보다 감정표현이 서툰 어른들에게 더 필요할 것도 같고. 근데 손으로 어떻게 듣는 걸까? 아 '손으로 들어주기'는 손을 청진기처럼 사용하는 거겠다. 그 사람의 손이나 어깨 등에 손을 대고, 진정으로 공감해 주는 것. 그 감정에 감응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들어주기, 경청이 아닐까. 부지런히 사람들의 손을 잡는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 앞자리 후배의 손을 잡아주고, 옆자리 선배와 쑥스러운 악수를 하자. 그렇게 온전히 '손'을 쓰며 살았으면 좋겠다.



손을 내밀지 않는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옛날이다. 한국이란 나라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버스를 타면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사실 모르는 사람은 아니다.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앉아 있는 사람이 서 있는 사람의 짐을 달라고 하면, 서 있는 사람은 기꺼이 손에 있던 짐을 주었다. 장바구니든 명품 핸드백이든 가리지 않고 서 있는 사람의 짐을 들어주었고, 서로의 짐을 덜어 주었다. 그때는 그랬었는데. 그동안 한국이란 나라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버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짐을 받아주기는커녕 서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모두들 손에 든 네모 속으로 피신하려고만 하는 걸까? 앉아 있는 사람들 자신의 짐만으로도 너무 힘에 부치기 때문일까? 서 있는 사람들의 짐이 예전 같지 않게 더 무거워졌기 때문일까? 어느 누구도 항상 앉아서 버스를 타고 갈 수 없는데.



약 손


아이들이 아기였을 때, 손바닥으로 배를 덮어 주었을 뿐인데 울음을 그치고 안정을 찾던 일이 기억난다. 내 손이 할머니 약 손도 아니고. 그때는 내가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무슨 짓을 했는지 알 것 같다. 엄청난 일이었다. 그것은 그냥 옆에 있어 주는 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보다 더 큰 안심은 없다. 사랑은 사랑하는 쌍방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추상적 개념. 그러므로 함께 있지 않으면 사랑은 없는 것이다. 지금 같이 있나요?







한껏 치장한 서로의 더듬이를 뽐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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