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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Jun 26. 2023

소 두 마리를 가진 농부

# 일은 어디서 어디로 흐르는가?


튼튼한 소와 병약한 소 두 마리를 가진 농부가 있다면... 그 농부는 건강한 소에게 쟁기를 채울 것이다. 이처럼 신은 건강하고 바르게 사는 자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한다. (탈무드)



일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 


옆 동료는 바쁜 척하고 있을 때, 그래서 더 힘이 들 때. 농부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내가 농부라도 일을 맡길 수 있는 소에게 쟁기를 채웠을 터. 그러나 꾀병 부리는 소를 가려내지 못하는 농부를 보면 화가 난다.



세상 누구라도


자기가 일을 많이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의도하지도 예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떼거지로 몰려올 때, 나도 모르게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 그래 일복도 복이다. 일복이 많아서 그렇지 뭐, 참아 넘기기엔 너무 억울했던 심경에 대한 소심한 항의. 일 잘하는 소를 붙잡는 농부의 심정을 이해하고 싶다가도 그늘에서 여물만 먹고 있는 동료 소를 보면 화가 났다.



어릴 때부터


나는 호작질 하기를 좋아했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일들의 원인은 손 때문이다. 내 엄지 손가락은 망치로 때려서 편 것 같다. 유독 엄지 손가락만 그렇다. 일명 뱀 대가리 모양이다. 형과 나만 그렇고 누나와 동생은 또 그렇지가 않다. 이런 손가락은 머리가 좋고 손재주가 있다고 어른들이 말했다. 물론 타고난 일복도 많을 거라고. 그래서 힘들 거라고. 아 어른들의 말은 왜 틀리는 법이 없는지. 세상에는 일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없던 일도 그가 있으면 생기는 그런 사람. 나의 일복은 엄지 손가락 때문에 생긴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과연 일복도 복이긴 한 걸까?



일 못하는 사람은


바쁜 척하면서 자신의 게으름을 감추지만, 일을 잘하는 사람은 바빠도 안 바쁜 척하면서 자신의 부지런함을 감춘다. 이제야 깨닫는다, 진짜 일잘러는 일못러로 위장한 사람이라는 것을.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데, 일은 못하는 사람에게서 잘하는 사람에게로 흐른다. 그러다 보니 결국 일은 적은 곳에서 많은 곳으로 흐르게 되는 것이다. 


부서 관리자의 입장에서 보면, 누가 하든 부서 내 업무는 기한 내 처리되어야 하고, 잡음 없이 매끄럽게 해결되기를 원한다. 조직 내에서 부서의 성과는 관리자의 성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직원이 하든 그건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다. 형식을 갖춰 정해놓은 업무분장표는 항상 예외로만 운용되고. 그러다 보니, 그건 내 업무가 아니라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람, 별 중요하지 않은 일에 매달려 항상 바쁘지만 결과물은 못 내는 사람, 무슨 일을 맡겨도 항상 감감무소식인 사람, 일을 시키려고 찾으면 언제나 자리에 없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튼튼한 소와 같은 사람이다. 일을 맡기면 묵묵히 책임감 있게 기한 안에 완결 짓는, 완벽주의적 기질이 있어 생각하지도 못한 경우까지 대안을 제시하는, 그러면서도 자랑이나 불평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 불공정하게도 일은 이 사람이 다하게 되는 것이다. 자 당신이 농부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초상권 보호를 위해 부득이 눈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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