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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May 01. 2023

내 안의 아군들

# 버려진 것들의 여행


한숨 푹 자도록 해. 땅 속 깊이 묻어놓은 꽃씨처럼, 자고 나면 네 어깨 위에는 따스한 햇빛이 내려앉고,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와 있을 거야. (최갑수, '잘 지내나요, 내 인생' 중)



한숨 푹 자려고 했는데, 


낯선 타국에서 조금이라도 더 두리번거리려는 욕심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2019년 겨울, 밤이 짧아 북유럽 여행에 적합한 계절이 아니라지만 뭐 어떤가. 핀란드 > 네덜란드 > 폴란드 > 스웨덴 > 핀란드로 이어지는 강행군. 몸은 피곤했지만 오랜만에 사진을 많이 찍어 가슴이 후련해졌다. 낯선 거리, 낯선 사람들, 낯선 음식... 낯선 곳에 있는 모든 것이 설레는 풍경으로 다가왔다. 



가끔,


다 버려두고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내가 떠나면 여기 있던 것들 다 떠날까 봐, 혹시라도 나 없는 동안 모두 떠날까 봐 떠나지 못했다. 그러다 미친 척 용기 내어, 아니 잠시 미쳐서 훌쩍 떠났다... 가 돌아오면. 흥! 폐허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더 잘 돌아가는 공장소리에 놀라게 된다. 그래 착각이다. 심각한 착각이다. 나 아니면 기계 멈추고 공장 문 닫을 거라는 걱정은. 나 역시 하나의 작은 톱니바퀴일 뿐. 상시 교체 가능한 부품일 뿐. 그러니 떠나고 싶을 땐 걱정 말고 여행을 다녀오시라. 여행은 내가 무엇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버려진 내가 잠시 떠나는 것이다. 가끔 다 버려두고 떠나고 싶을 때는... 혹시 내가 버려진 게 아닌지 성찰해 보라.



여행은,


잃어버린 나를 찾아오는 일이라 했던가. 씩씩하던 나, 활짝 잘 웃던 나, 곧잘 수다 떨던 나, 가슴이 뜨겁던 나, 호기심 많던 나... 살면서 이리 치고 저리 치며 움츠러들다 달아나버린 원래의 나를, 나는 머나먼 이국 땅에서 찾고 있었던 것일까. 마지막 날, 길어지는 백야(白夜) 속에서도 낮잠 같은 잠을 한숨 푹 잤다. 이 여행이 끝나면 모든 건 제자리로 돌아와 있을 것이다. 나는 여행에서 찾은 더 많은 나와 함께 할 것이고, 그만큼 더 성숙한 사람이 될 것이다. 이제 내 안에 아군이 많다. 사는 게 두렵지 않다.





2019년 겨울, 폴란드 바르샤바 구시가 광장(Rynek Starego Miasta)

폴란드 바르샤바 구시가 광장(Rynek Starego Miasta)을 카카오 맵에서 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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