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씀 Jun 12. 2023

누가 어리석은 사람인가?

# 똑똑한 바보들


어떤 어리석은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왜 바보 같으냐고? 5센트와 10센트짜리 동전을 그에게 보여주고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그 아이는 항상 5센트짜리를 집었다. 언제나 예외 없이 마찬가지였다. 이러니 바보가 아니란 말인가? 모두들 그 아이를 비웃었다. 한 번은 외지에서 온 현명한 사람이 그곳을 지나가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 직접 시험을 해보았다. 과연 사람들의 말대로 아이는 5센트짜리를 골랐다. 현자는 크게 웃으며 아이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자네 정말 똑똑하군."

그 아이도 따라 웃었다. 도대체 이 아이는 어리석은가, 그렇지 않은가.

윌리엄 헨리 해리슨(William Henry Harrison)이라는 이 소년은 자라서 미국의 제9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당신이 10센트짜리를 집으면 다음번에 누가 당신에게 돈을 집으라고 하겠는가?

(장지엔펑, '인생의 지혜가 담긴 111가지 이야기' 중)



누가 어리석은 사람인가?


우리가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수 있다. 그의 사고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우리가 어리석은 것일 수 있다. 어리석다고 비웃는 그 사람이 속으로 우리를 비웃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정말 어리석은 사람은 이런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첫 번째, 불평만 하는 사람 


잘못을 알았으면 바꾸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잘못에 대하여 뒤에서 불평만 하고, 앞으로 나서지 않는 사람이 있다. 잘못을 들춰내어 비판하는 일이 자기의 소명이라 생각하는 사람 말이다. 지적질만큼 무책임하고 쉬운 일이 있던가. 세상에는 말로 비판하는 사람이 있고, 행동으로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비판에서 그치는 사람이 있고, 비판을 발판으로 삼아 변화의 동력으로 삼는 사람이 있다. 비판은 불평과 달리 변화를 위한 행동의 주문서다. 구체적인 방향 제시가 없는 비판은 불평에 지나지 않는다. 불평만 하는 사람은 어리석다. 그는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줄 뿐이다. 제대로 비판하고 정의를 주문하는 일을 모르는 사람이다. 제대로 비판하려면 몸으로 하자. 



두 번째,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는 사람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실패의 열쇠라고 불릴 정도다. 소문난 맛집을 가도 맛없어하는 사람은 꼭 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의 입맛을 맞추려고, 있는 양념 다 넣었다간 아무도 먹지 않게 된다. 세상의 모든 맛이 들어 있는 음식은 없다. 맹물조차도 서로 기호가 다르니까. 따라서 가장 중요한 단 한 사람, '나'에게 맞는 음식을 만드는 게 현명하다고 본다. 내가 맛있으면, 나처럼 '맛있어'하는 사람도 있고, '별로'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뭐 어떤가. 나에게 기쁨을 주고 내가 좋아서 한 일들이 쌓이면 성공한 삶이 아닐까. 사람들은 미치도록 만족해하는 사람을 따라 하게 되어 있다.



세 번째, 나를 믿지 않는 사람


배려심이 지나친 사람, 친절함이 과다한 사람은, 사람들이 바라는 모습대로 살아주려 한다. 주변 사람들이 믿고 있는 존재, 그대로 남으려고 노력한다. 면 전에선 거절을 표명하지만 결국은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만다. 이렇게 살고 있는 모습이 참 어리석다. 남들이 생각하는 모습이 아니라, 내가 바라고 있는 모습은 어떤 건지 궁금하다. 믿어 주는 일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내가 나를 믿는 그 숙제를 아직 마치지 못했다. 나는 아들을 믿고, 딸을 믿는다. 그런데 나에 대한 믿음은 잘 생기지 않는다. 나는 내가 믿어주는 대로 될 준비가 되어 있는데 말이다.



끝으로, 자기를 너무 많이 사용하는 사람


그러게 진작 좀 느긋해지자 그랬지. 요즘 들어 부쩍 조급해 보이더라니. 급하면 다 못 본다는 말이 맞았다. 주차장에서 나오다 접촉사고가 났다. 출구 쪽으로 우회전을 하는데, 어디서 갑자기 작은 차가 나타나 내 차를 가격했다. 때린 차나 맞은 차나 모두 이마가 찌그러지고 멍이 들었다. 그만하길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요즘 보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다는 반성을 한다. 방학이 끝나갈수록 조급해지는 밀린 숙제처럼, 최근 나의 마음이 그랬다. 멈춰야 보이는 것들이 있고, 느림 속에서만 보이는 것들도 있다. 그 두 가지를 다 놓치며 달려가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번 일은 그것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에 대한 소비를 좀 줄여야 한다고 다짐만 할 게 아니라, 정말로 줄였어야 했다. 그동안 나는 나를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어쩌자고 고갈될 때까지 퍼올렸는지, 하얘질 때까지 태웠는지. 아 어리석은 사람아, 큰 일 나겠다. 제발 아프기 전에 멈추자. 





어리석음을 알아차린 사람은 더 이상 어리석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엇을 연습하고 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