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하게 맷집만 좋아서

by 완뚜

잘 참는다.

아픈 것도 참고 슬픈 것도 참고 자존심이 상해도 안 그런척 참는다.


참을 인 세개면 살인도 면한다는데, 그렇다는데. 나는 참고 참다가 병을 키운다.


소화가 안되서 소화제를 장복하고 내과를 전전하며 처방전을 받아오고, 혼자 빈집을 지키며 배를 감싸고 뒹굴기도 여러날을 보낸다. 결국 버티고 버티다 몇군데의 병원을 돌고 돌아 긴급으로 수술이 진행된다.

그때는 남편이 내 손을 잡아주고 부축해 주고 수속을 밟아 준다. 별난 마누라를 위해 무리해서라도 일인실을 잡아 쉬도록 하고 자신은 심부름에 여념이 없다.

3년전 이야기이다.


다리를 절기 시작한지 꼭 한달만에 병원을 검색했다. 참다참다 잠도 못 잘 정도의 고통 앞에서 두 손 들고 병원에 간다. 또 여러 병원을 전전하기 시작했다. 가는 곳마다 병명도 다르고 치료법도 다르다. 나는 다양한 병명을 획득중이다. 장기치료를 권하는 곳도 있다. 어마어마한 치료비에 간이 달아난다. 의사가 자꾸 겁을 준다. 돌연사 할 가능성이 있다나 뭐라나! 그래? 그래서 어쩌라고? 병원비는 상상을 초월하며 늘어나고 있고, 보험료로도 정리가 되지 않는데 어쩌라고.


당장 일은 해야하니 급한데로 다리부터 어찌 고쳐봐야한다. 여러가지 검사가 이어진다. 척추뼈가 내려 앉았다고, 그건 다행히 시술로 치료가 가능하단다. 장기전이다. 3번의 주사시술과 끝나지 않는 도수치료, 며칠만에 카드대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치료를 위해 대기실에 기다리는데 남편 손을 잡고 앉은 여인이 눈에 들어온다. 부럽다. 다정하기도 하다. 나도 저랬었지. 그도 그랬는데. 척추 시술후 어지러운 몸을 간호사가 부축해 준다. 작은 의자에 앉아 정신을 차리려 안간힘을 쓰는데 눈앞의 남의 남편은 아내가 안타까워 전전긍긍이다. 눈물이 핑 돌아 눈만 자꾸 깜빡인다. 아파도 도와 줄 누군가의 자리가 비었다는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 예전에는 미쳐 몰랐다. 위로는 고사하고 시술 후 쉴 수 있는 시간만이라도 주어진다면 좋겠다. 허리에 주사약을 집어 넣고 정신없이 돌아나와 사무실에 도착했다. 책상앞에 앉아 바쁜 업무를 처리하는데 아직도 어지럽다. 등허리의 통증은 모든 사고를 마비시킨다. 자꾸만 업무 실수가 나온다.

그리고.

눈물이 따라 나올 것만 같아 이중고를 겪는다.


나는 아프다.

일년동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잃어버린 사랑을 그리워하느라, 그리고 갑자기 주어진 책임감에 눌린 어깨에 힘을 기르느라 진이 모두 빠진 모양이다. 모든 것이 소진 되었다. 검사결과를 분석해 주는 의사의 말은 결핍, 결핍, 결핍 그리고 스트레스 수치가 너무 높다며 이러다가 큰일 난다고 겁을 준다. 검사 결과는 귓가에만 맴돈다. 아직 수리할 곳이 많아서 수치적 결함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일단 보여지는 불편함부터 치료 해야한다. 이러다 병원비가 아까워, 아니 혼자 다니는 병원이 외로워서 치료를 포기할지도 모르겠다.


집에 돌아와 누웠다. 엄마밥이 먹고 싶다는 아들을 무시하고 몸을 뉘었다. 천장을 본다. 혼자 쓰는 침대에서 소리 죽여 흐느낀다. 눈물은 말랐는데 날숨과 함께 목에서 꺽꺽거린다. 아이에게 들킬까 봐 입을 틀어 막는다. 숨이 차다. 순간적으로 숨이 막히며 가슴을 압박한다. 최근 일어나는 작은 파동이다. 가슴을 누르며 급하게 숨을 몰아 쉰다. 혼자서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불편함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있던 자리의 허전함으로 인한 외로움. 아프다고 어리광 부릴 상대의 부재로 인한 외로움. 뼈속까지 파고드는 긴장과 외로움에 전신이 흔들린다. 살아야 하는데. 머리로는 당연한 삶이 지친 육신은 그만두자 한다. 그 좋던 맷집도 다 닳아 없어진 것인지 흔들리고 흔들려서 빈 소리만 짤랑거린다.


나는 빈 깡통이다. 껍데만 남겨져 상처입고 찌그러진 빈 깡통이다. 그래서 나는 요란스럽기만 하다.


절뚝절뚝 아픈 다리를 간신히 끌고 병원을 왕래한다. 차도가 없어 답답하니 우울감이 상승한다. 아파서 몇주째 가지 못했던 친정에 들러 오랜만에 엄마를 만났다. 나를 보더니 깜짝 놀란다. 내 손을 끌고 다른 병원으로 데리고 간다. 이런 저런 검사를 다시 받았다. 아프기 시작하고 네번째 병원이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더욱 망가진 몸뚱아리는 이제 겁이 날 지경이다. 어떡하지? 치료는 시작했지만 몇 달 동안의 경험은 나를 여전히 부정적으로 만든다. 가슴이 무너진다. 엄마 앞에서 태연한 척, 괜찮은 척 돌아섰다. 치료 잘 받으면 괜찮을거라고 장담하고 돌아선다.


그리고 그 밤, 나는 다시 헉헉 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부여 잡는다. 겁이 난다. 아이가 혼자 남겨질까 봐, 아니 내가 아이의 짐이 될까 봐 겁이 난다. 그래서 갈피를 잡지 못하니 심장이 요동치는 모양이다. 가끔 숨쉬기가 힘들어 잠을 깨더니 기어이 맨 정신에도 숨이 턱까지 헐떡여진다. 가슴을 팡팡 두드리다가 기어이 눈물을 쏟는다.


바쁜 아침, 출근 준비를 하다가 오랜만에 베란다 앞에서 하늘을 본다. 내가 그렇게 좋아해서, 남편이 최선을 다해 만들어 준 이 집에서, 이경치를 즐기며 살았는데 바빠도 너무 바빠서 참으로 오랜만에 눈에 담는다. 다리가 아프니 모든 행동이 느려지고 덕분에 오랜만에 하늘과 눈을 맞춘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가로수의 은행잎이 노오랗게 물들었다. 아프다 깨어나니 세상이 물드는 중이다. 예쁘다. 혼자 시끄럽던 뉴스에서 한우데이라며 선전 중이다. 이런 이벤트 데이일 때면 일찍 퇴근한 남편의 손에는 어김없이 투뿔 한우 고기가 들려 있었는데. 아들과 남편이 밥톨 한알 남기지 않고 먹는 유일한 날이 그런 날이었는데 더이상 그런 이벤트는 우리집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일년동안 마음을 앓았다. 이제 일년이나 몸앓이를 하게 되는 건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다시 맷집을 키우고 살아나가야 한다.


살자. 살자. 건강하게 살자.

할 수 있는 만큼만. 과하지 않게. 한 걸음씩 앞으로 가다보면 결국 끝은 만나질 것이고 결승점은 오기 마련일테지. 그리고 그때는 참 잘 참았다며 나를 토닥여 줄 수 있겠지. 그런 날이 오겠지?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