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도 외로웠을까

by 완뚜

새벽,

알람소리보다 빠른 기상은 아마도 실수할까 봐 긴장해서 생긴 새로운 습관일게다.


눈을 뜨자마자 주위를 더듬는다. 휴대폰, 선풍기 리모콘, 잠들기 전까지 끼고 있던 안경, 머리끈 등이 차례로 손에 잡힌다. 찾고 있던 리모콘은 결국 반대쪽 베게 옆에서 발견했다. 혼자 쓰기 시작한 침대는 넓어도 너무 넓어서 나도 널부러지고 물건도 널부러진다.


결국 찾아낸 리모컨으로 티브이를 켰다. 맨날 한 채널에 고정되어 있는 티브이는 오늘도 새벽부터 세상 소식을 전한다. 건성으로 흘려 듣는 중 살포시 선잠이 들었다 깨어난다. 하루의 시작이다.


퇴근 후 도착한 집은 고요하다. 아들은 방문을 닫고 공부 중이다. 고3인 아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나는 습관적으로 티브이를 켰다. 손을 씻고 저녁 준비와 거실 청소등 분주한 가운데 티브이는 저 혼자 시끄럽게 떠들어 댄다. '나 지금 뭐 한 거니?' 보지도 않는 티브이 소음이 적막을 조금 걷어 준다는 이유로 아들의 공부까지 방해하며 켜 놓은 티브이를 보며 새로 생긴 이상한 습관에 놀란다.


외로웠다. 멈춰버린 전화 벨 소리와 소곤대는 헛소리들. 그런 것들이 그리울 거라고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요즘 나는 내가 아닌듯 하다. 완전히 달라져 버린 자아에 스스로 놀라기를 반복한다.


남편도 그랬을까?

봉사라는 탈을 쓰고 돌아다니던 나를 기다리며, 고등학생 아들 때문에 안방으로 쫒겨 들어 소리 죽여 티브이 시청이나 하던 남편도 그랬을까? 그때 그는 외로웠을까? 밖으로 돌아다니다 온 내가 피곤한 몸을 소파에 묻고 있으면 살며시 옆에 앉으며 시작하는 이야기를 헛소리 그만하라고, 그 굵고 좋던 목소리를 시끄럽다며 아이 공부 방해된다며 안방으로 들여보냈다. 곁을 주지 않고 안방으로 쫓아버렸다. 곧이어 카톡으로 무언가를 가져다 달라는 남편에게 눈을 흘기며 가져다 주고는 찬바람 생하게 돌아 나왔다. 그는 얘기가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모든 심부름 다 해주던 그가 나를 찾는건 그 이유 하나였을거다. 단지 그 이유 하나. 그것을 나는 지금 깨닫는다. 바보 도 통하는 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온다. 눈에서 물이 흐른다. 오늘도 수도꼭지가 열렸다. 눈이 시리다. 그때 나는 왜 그랬을까? 많이 외로웠겠다.


통화를 길게 하지 않는다.

용건만 간단히. 내 삶의 모토였다. 지인이 걸어 온 전화에 나는 끊기 싫어 자꾸만 이야깃 거리를 찾아낸다.

남편도 그랬을까? 그래서 였을까?

외로워서, 목소리로 위로 받고 싶어서였나? 그는 하루에도 수십통의 전화를 걸어왔다. 귀찮을 만큼 집요하게 걸려 온 전화는 대화거리가 끊기면 숨소리만 나누곤 했다. 결국 내가 할 말 없으면 끊자고 한다. 그러면 남편은 쥐어짜내 찾아낸 불필요한 대화를 이어나가곤 했다. 그도 외로웠나 보다.


경험은 새로운 진실을 알려주기도 한다.

나는 외롭다. 걸려오지 않는 전화에, 적막한 거실에서 심장이 떨릴만큼 외롭다. 그가 외로웠던 만큼 나는 벌을 받는 중이다. 했던 행실이 있으니 벌을 달게 받아야 하는데 결코 달지가 않다. 쓴 위액이 식도로 역류하는 듯 쓰리고 쓰리다. 계속 전화기를 열어 그의 단축번호를 누른다. 해지되어 남의 손에 넘어간 전화를 잘못 걸지 않기 위해 뒷번호는 삭제해 국번만 남겨진 그의 번호가 웃는 얼굴과 함께 뜬다. 통화를 누른다. 익숙하지만 듣고 싶지 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지금 거신 번호는 ..."


외롭다. 그가 외로웠던 딱 그만큼만 외로웠으면 좋겠다. 너무 오래, 너무 크게 외로워서 심장이 남아나지 않을까 봐 하느님께 빈다. "조금만 더 아프다 말게요, 그래도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