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결국은 지나가게 되어 있던 날.
다행히 휴무일과 겹쳐 한 달만에 그를 만나러 간다. 아침부터 날씨가 흐리다. 마음처럼 먹구름이 가득하다. 혹여 눈이라도 내릴까 내심 걱정이 앞서 날씨를 검색했다. 다행이다. 눈은 내리지 않는단다. 연말을 맞아 정신없이 바빴던 주일이 지나고 모처럼의 휴무일,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편을 보낸지 백일이 된 날, 나의 휴무일이다. 혼자 나서는 것이 못내 걱정이 된 언니가 결국 동생을 섭외해 따라 붙었다. 혼자 내려 갔다면 가는 내내 눈물 바다가 되었을 나는 동생과 소풍가듯 그를 만나러 갔다. 참 지긋지긋하게 긴 시간이었다. 100 이라는 숫자는 언제나 꽉찬 수, 크고 무거운 숫자다. 그 길고 두려웠던 백 년 같았던 시간의 무게를 견디고 이제 조금씩 그를 마음에서 놓아 주려고 한다. 여전히 눈물은 나겠고 그립고 보고 싶겠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추억처럼 그를 기억해야겠다. 잘 될지 모르겠지만.
방문객을 맞이하느라 바빴던 주말이 지나고 한 주 중 가장 조용한 월요일의 납골당은 그래서 쓸쓸하고 적막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남편의 한 칸 짜리 아파트에 찾아 가는 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사진만 하염없이 어루만지고 있는 중년 여성이 보인다. 일찍 세상을 떠난 딸의 환한 사진 속 얼굴을 보는 중년여성의 마음이 짐작되어 마음이 아프다. 이곳 납골당에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숙연해지기 마련이다. 남편에게로 발길을 돌렸다. 야외 납골당에는 여전히 햇볕이 따스하게 내려 앉아 있고 예쁘게 정성들여 꽂아 두었던 조화도 화사하다. 그는 여전히 젋고 예쁘게 웃고 있으며 여전히 차가운 대리석 너머에 있다.
그의 앞에 소주를 한 잔 올리고 좋아했던 떡과 강정을 올렸다. '너무 오랜만이지? 한 달만에 왔네. 그동안 나 열심히 살았어. 보고 있지? 당신도 잘 지내고 있지?' 하고 싶은 말은 수 천 가지인데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차가운 벽과 그의 이름만 커다랗게 눈에 새겨지고 있다. 동생이 옆에서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날씨가 춥다. 화창한데 기온은 영하를 가리키고 있다. 동생이 힘들까 봐 내려 가자고 하고 납골당을 돌아 보았다. 올 때 마다 납골당을 한 바퀴 돌며 눈에 들어오는 이들의 사연을 둘러 보게 된다. 살아 있으면 몇 살인지, 언제 사망했는지 사연을 추측해 본다. 생각보다 젊은 나이에 그곳에 와 계신 분들이 많아 번번히 놀란다. 그러면 안되지만 이기심이 발동하는지 남편만 억울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의 위로를 삼기도 한다. 이상하게도 그게 위로가 된다. 그래서 매번 둘러보게 되는 모양이다.
지난 번에 보지 못 했던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화분에는 삐뚫삐뚫 매직으로 '누구누구씨 보고 싶어요. 미안합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의 납골당 아래 할머니의 편지 화분인듯 보였다. 심장이 멈추는 것 같다. 사람들 마음은 다 똑같구나. 남편을 보내면 미안하다는 마음이 너무 절절해 가슴이 시리고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고 싶어지나 보다. 그 표현법이 할머니는 편지 화분이었다면 나는 글을 쓰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그 삐뚫한 다섯 글자에 꽂혀 한참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기억하고 싶어 사진에 담고 있으니 동생이 이상한 지 쳐다 본다. 나는 쑥스러워하며 마음은 다 같은 모양이라고 설명했다.
돌아오는 길, 아침부터 찌푸리고 먹구름을 잔뜩 머금던 하늘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짝 개었다. 하늘이 이보다 맑을 수 없고 세상이 반짝인다. 오랜만에 찾아온 마누라를 보니 즐거웠나 보다. 그런 가당찮은 생각을 하며 이제 조금은 남편을 놓아 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 보며 집으로 향했다.
"나 잘 살아 볼 게. 미안한 마음은 조금만 남기고 당신 덕분에 행복했던 시간을 차곡차곡 기억하며 힘내서 열심히 멋지게 살아 볼 게. 오늘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