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by 완뚜

새벽부터 원격무인경비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는 연락을 받았다. 출근길의 마음이 무겁다. 어디서부터 정리를 해 나가야하나 머리가 빠르게 움직이는 중이다. 전력이 고르지못하고 끊기기를 반복한다는 연락이었다. 일단 전기 담당회사부터 불렀다. 근처의 송전탑에 문제가 생긴거 같다며 한전에서 수리중이라고 전한다. 이것저것 확인해보더니 복구되었는지 전력에 이상은 없다는 소견이다.

여전히 경비시스템이 먹통이다. 단자함을 들여다본들 복잡하기만 하다. 전화번호를 뒤져본다. 단자함에 써진 방재라는 글자만 보고 소방방제에 연락했다. 그곳은 방화셔터문만 관리하니 자기소관이 아니란다. 어렵다. 짜증이 나기시작했다. 다시 경비시스템 직원을 연결하고 담당자를 불렀다. 이리저리 확인하더니 전력 불균형으로 기계가 고장났다는 최후 통지다. 모든 건물을 확인했다. 다른 이상은 혹시 없었는지 차근차근 살핀다. 원인은 알았으니 다행인가. 연휴가 끼인 주말이라 수리는 어렵다고 한다. 당분간 번거롭게 생겼다.


어떤 일이 예고도 없이 발생하면 그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까다롭다. 예전에는 단순명쾌했던 거 같은데 요즘은 기능이 업그레이드되고 편리해진 만큼 꼬이고 엮인 것도 많다. 단순히 열쇠만 들고 다닐때가 좋았을까. 손가락으로 잠긴 문을 열고, 휴대폰 앱으로 원격조정이 가능한 지금의 시스템이 더 편한가. 열쇠만 있을때는 근무시간외의 연락은 불필요했다. 방법이 없기에. 그런데 원격조정이 가능해지고는 수시로 근무시간 외에도 전화를 받고 cctv를 확인하고 셔터를 열어줘야한다. 한마디로 편해지기위해 만든 시스템에 삶이 묶여 버린 형국이다.


앱을 깔고 그안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도 개인정보법이라는 정책 아래 더욱 까다로워졌다. 몇 달 혹은 몇 년동안 접속이 없었던 앱에서의 작업이 필요해지면 더욱 까다롭다. 차라리 다시 가입하느니만 못하다. 공연을 보는 것조차 인터넷 예매는 관람자가 직접 예매하는 것이 원칙이다.


나는 늙어가고 있다. 늙는 다는 것은 사고가 단순해지고 머리회전은 느려지며 감각이 무터지는 것이다. 모든 기능이 느려지고 무뎌진다. 신체와 영혼이 모두 노후되는 과정인 것이다. 이러하니 그렇게 빠릿하게 인터넷을 넘나들며 못하는 작업이 없던 내가 종국에는 흔들리고 곤란한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요즘따라 더 늙는 것을 실감하며 우울해지는 중이다.


점점 자신이 없다. 아날로그식 열쇠와 비밀번호 카드를 지갑에 넣어다니고 카드 수십장이 지갑을 빼곡히 채우던 그때가 잠시나마 그립다.


하루를 분주히 움직였다. 머리도 몸도 지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슈퍼에서 물건을 구입한다. 휴대폰을 꺼내 액정에 손을 대고 아래에서 위로 쓰윽, 카드가 나온다. 오른쪽 버튼에 미리 인식시켜 둔 손가락을 쓰윽, 판매원에게 내미니 금새 결재가 완료된다. 동시에 문자음이 울리고 사용내역이 날아온다. 아! 역시 이맛이지. 문제만 생기지 않는다면 좋은 세상이지. 요정도이라도 만질 수 있도록 조금만 천천히 늙으면 진짜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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