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시간이 흘러간다.
바쁜 업무를 마치고 한숨 돌리는 시간. 기지개를 켜며 바깥공기를 마시러 사무실을 탈출했다. 한낮의 내리 쬐는 뜨거운 햇살에 미간이 자동으로 찡그려지지만 그것마저 신선하다. 몇시간의 사무실 업무는 호흡마저 거칠게 만든다. 탁한 공기를 들이 마신 폐를 정화시키라며 나를 일으켜 세워 기어이 사무실 문을 열게 만든다. 잠시 마당을 거닐었다. 더운 바람이 오히려 신선할 지경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하는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귓가를 배회한다. 번뜩 정신이 돌아오며 출입구로 시선을 돌렸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큰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왕복 8차선도로를 달리는 차량이 내지르는 바퀴소리에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여전히 정확하지 않다. 손짓을 한다. 아마 나를 부르는 것 같다. 조금은 귀찮은 마음이 앞서지만 발걸음을 빨리한다.
"저기 노루가 죽어 있어요. 보기 그러니까 빨리 경찰에 전화해요. 경찰에서 처리해 줄 거에요." 어리둥절한 나의 표정을 보더니 기어이 내 손목을 잡아 끈다.
헉, 덩치가 엄청 큰 누렁이가 누워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지는 오그러뜨린 채 몸에 찰싹 달라 붙어있고 얼굴은 목이 뒤로 넘어가 꺽인 채로 도롯가 화단에 누워있다. 몸에는 이미 파리떼가 진을 치고 있다. 순간 토악질이 올라온다. 내 손목을 끌어대던 아주머니는 이미 멘붕으로 정신을 놓은 나를 버리고 제 갈길로 가 버렸다.
'빠른 수습이 필요한데.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할까.'
사무실로 들어가 검색창을 켠다. '죽은 야생동물 처리' 전라도 어딘가의 신고처만 검색된다. 모르겠다. 일단 아주머니 말씀대로 112로 전화를 걸었다. 친절한 아저씨가 120으로 안내해주신다. 역시 전화 민원은 몇다리를 거쳐야 제 맛인가 보다. 120 에서는 구청민원과 전화번호를 불러주더니 잠시 기다리라며 직접 연결해 주신다. 구청에서는 담당직원에게 연락해 들르겠다는 답변. 다행히 세군데 통화로 쉽게(비교적 쉬웠던거 맞다.) 처리했다고 생각하고 사무실에서 실무 담당자의 연락을 기다렸다. 곧 전화가 왔지만 다른 곳에도 치울 사체가 있으니 조금 걸리겠다는 답변. 괜찮다고 와주시기만 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영 찜찜한 마음에 사무실과 외부도로쪽으로 연결된 창문만 자꾸 바라보게 된다. 그쪽 어딘가에 그 녀석이 슬프게 누워있을 것이다. 몸 위로 날아다니던 파리가 자꾸 눈에 아른거리고 닫힌 창문으로 날아 들것만 같은 상상에 질끈 눈을 감아본다.
몇시간 후 해가 어스름지기 시작한 시각, 담당자가 도착했다. 위치를 알려주고 먼거리에 서서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담당자는 사유지라서 자기들이 못치운다는 답변이다. 어이상실이다. 정체는 고라니, 로드킬은 아니란다. 원인은 모르겠다. 일단 고라니가 누워있는 곳은 도롯가 인도옆 폭이 아주 좁은 화단, 내가 근무하는 성당 벽과 인도 사이의 작은 화단, 결국 성당안에서 죽은 것이다. 치우는 방법이 또 가관이다. 담당자들이 치우게 되면 일단 마대자루에 고라니를 넣고 그 자리에 둔단다. 그러면 쓰레기차가 와서 실어간다나. 우리가 치워야 하는 방법도 비슷한데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쓰레기 모아두는 곳에 두면 역시 쓰레기차에서 실어간다고 한다. 사무실에 혼자있던 나는 담당자에게 애처러운 눈빛을 보내보았지만 이내 거절당했다. 규정이 그렇단다.
일단 후퇴, 자잘한 일을 처리해주시는 신자분께 연락을 드렸다. 알겠다는 대답. 그동안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남자 신자분 두명과 신부님이 현장으로 가는 모습이 cctv에 보인다. 잠시 후 사무실에 돌아온 세분이 고라니가 없다고 어디에 있냐고 하셔서 정확한 위치를 알려드리기위해 미리 찍어두었던 사진을 보여드렸다. 생각보다 꾀 큰 고라니의 모습에 놀란다. 사라진 고라니의 위치파악을 위해 조금전 연락드렸던 신자분께 다시 연락했더니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놀랄까봐 일단 한쪽으로 치워두었다며 곧 사무실에 들어오시겠다는 대답이다. 의혹 하나는 풀렸다. 없어진 건 아니었다. 종량제 봉투를 가지고 나가 처리를 완료하고 잘 처리했다며 소식을 전해준다. 물론 고라니를 넣은 종량제 봉투는 쓰레기 수거 장소에 덩그러니 놓여있겠지. 그렇게 일단락된 소동.
퇴근 후, 여전히 머리가 소란하다. 고라니의 모습에 뱃속 사정이 좋지 않다. 휴대폰 속에 든 사진 조차 찜찜하다. 어디서 어떻게 내려와 왜 죽었을까. 내 근무지는 건물 한쪽이 공원이 있는 산과 나란히 붙어 있고 반대쪽은 넓은 도로이다. 덕분에 온갖 야생화들을 볼 수있고 한적한 곳이다. 좋은 입지조건이라 생각했고 여전히 좋은 조건이긴 하다.
지난밤으로 추정되는 고라니의 사망일, 그날은 덥고 습했고 모처럼 퍼붓는 비가 밤새 계속되던 날이었다. 미궁에 빠진 고라니 사건은 그렇게 미제사건으로 일단락 되었다.
그리고, 고라니 소동 후 사무실로 찾아온 어느 분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
"고라니라니, 멧돼지는 있는거 알았지만 고라니가 내려오기는 처음이네."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