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머리 속이 복잡하다. 뭐부터 할까 싶다가도 마음을 비운다. 생각나는데로 하고 싶은데로 하면 그뿐이다. 전문가도 아니고 혼자 만족하면되는 것이니 부담될 것도 없고 덕분에 안그래도 빠른 손이 더 빠르게 움직인다.
하고 싶은 것이 다양하니 집이 좁다. 서랍장 가득 원단이 들어 있고, 한가방 가득 매듭 끈이 있다. 프랑스자수 실은 그나마 아직까지 책상을 차지하고 있고 수채화 재료는 수업에 오고가느라 가방속에 정리되어있다. 그나마 다행히 글쓰는 작업은 최근 노트북에서 휴대폰으로 재료를 바꾸면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아쉬운건 교정의 시간이 없어지고 오탈자가 난무하게 된 정도랄까. 그건 다음에 생길 출판 기회가 오면 그때 수정해도 될 일이다.
드디어 며칠동안 실랑이하던 자수가 완성되었다. 이렇게 자수를 놓고 가방으로 완성해 지인에게 선물하면 행복하다. 비싼 선물보다 하나밖에 없는 물건에 정성가득한 선물이니 상대가 좋아하든 아니든 상관이 없다. 내 만족도는 최대치가 된다. 이번에도 정성의 한땀한땀이 쌓였다. 내가 스스로 스티치의 종류까지 정해가며 하는 작업은 시간이 많이 걸렸다. 막판에 대충했던 표가 나서 아쉬움도 있지만 어찌 되었던 자수틀에서 원단을 빼낼때의 희열은 짜릿하다. 어제까지 들고 있던 자수를 마치고 드르륵, 배운 적도 없어 삐뚫빼뚫한 재봉질로 가방을 완성하고 만족감으로 배를 불리며 잠이 들었다. 책상 위는 며칠동안 안고 있던 재료들로 너저분하다.
오늘은 다가오는 그림책 수업 마감일을 생각해서 그림 연습이 필요하다 싶어 퇴근전부터 목표를 그림그리기에 두었다. 집에 돌아오니 간밤까지 몰두하던 것들의 흔적이 그대로이다. 그림이 그리고 싶은데 자리가 없다. 한쪽에 세워둔 간이 테이블을 꺼내고 미술가방을 들고왔다. 가방안에는 수채화 준비물과 함께 최근 시작한 그림책 그리기 재료도 수북하다.
수채화 재료를 꺼냈다. 집 곳곳에 널부러져 있던 붓을 모으니 화가가 부럽지 않다. 너무 많으니 색을 입히기 위해 선택하는 것도 곤욕이다. 신중하게 몆개만 가려내고 나머지는 다시 가방속으로. 아직은 생초보. 인터넷을 검색하고 몇개를 흉내내어 본다. 비교적 만족. 전문화가가 될 것도 아니고 예전에 공동저서로 출판한 책을 편집할 때 한계로 다가왔던 것이 삽화라 요즘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그림 수업 중인데 이게 또 은근히 용기를 준다. 무엇도 모를 때보다 과감해졌달까. 역시 배워서 남 주는 것도 아니고 딿아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배운 수많은 수업들이, 잊고 살았던 것들이 가끔씩 튀어나와 합체되며 작업을 완성할 때면 그 시간들이 결코 아깝지 않다. 어디 써 먹을까 싶어 배우기를 포기했던 것들 조차 요즘은 후회되기도 하니 많이 배우고 많이 즐겨야겠다. 배워서 남주냐는 말이 있다. 오롯이 내 기술이 되고 정보가 되니 모두 내꺼겠지만 그걸로 선물을 완성하고 건낼 때면 그런 생각이 든다. 배워서 남줄 수도 있네. 이거 꽤 괜찮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