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살짝 벌리고 혀를 아래 입안쪽에 말아 붙인 채 가볍게 튕겨주면 강아지를 부를때 쓰는 소리가 난다.
나의 영원한 정신적 안식처, 외갓집에서는 삽작거리라고 부르던 큰길에만 나가도 지천으로 야생화가 피어 있었다. 그 사이로 덤성덤성 뻣치고 나온 강아지 풀은 어린 내 눈에도 도도해 보였다. 한더위 땡볕에 흐느적거리며 누워버린 잡풀들 사이에서도 꼿꼿이 허리를 펴고 땡볕과 정면 승부를 하며 마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성인이 후광을 입고 있는듯도 보이고 홀로 외로운 중에도 우뚝선 무대 위 아이돌을 보는 듯도 했다. 사촌오빠가 끌어주는 수레를 타고 강가로 나가는 길은 언제나 신이 났다. 가는 길에 간간이 오빠가 내 손에 쥐어 준 강아지 풀을 목끝으로 달랑 꺾어 꽃대는 버리고 손바닥 위에 올린다. 그리고 혀를 열심히 차는데도 오빠 손 위의 강아지 풀은 부름에 응답하며 꼼지락거리는데 내 손 위의 강아지풀은 요지부동이다. 강가에 닿을때까지 입안이 얼얼해지도록 혀를 튕겨 보아도 요지부동이었고 그러면 울상이 된 나를 보며 오빠는 즐거워했었지. 다 자라 어른이 된 지금에야 그 비밀을 알았으니 오빠 말대로 나도 어지간히 바보였나 보다. 외조부모가 모두 돌아가시고 외삼촌마저 이 세상에 없으니 외갓집은 이미 없어진지가 오래되었다. 더이상 나의 감정적 의지처가 없다는 생각은 가끔 나를 우울하게 한다.
하여튼 수년만에 사무실 앞 화단에 흐드러진 강아지풀이 눈에 들어왔다. 항상 그 자리에 있었겠지만 내가 이미 세속에 물들어 한눈 팔 시간이 없었기에 보지 못했던 것이겠지. 좋아했던 친구를 만난 기분이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오늘, 외근 다녀오는 길에 자동차 차창 밖에서 여전히 도도하게 빛나며 꼿꼿이 서 있는 녀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우연히도. 더위도 잊게 만들며 시선을 잡는다. 녀석들은 해와 마주하며 정면승부 중이다. 오늘따라 해바라기보다 그 기상이 더 하면 더했지 지지않는다. 가늘고 곧은 꽃대가 당당하고 고지식하여 갖 입문한 어린 선비같다. 속도를 늦추어 강아지풀과 눈을 맞춘다. 반갑다 반기는 것만 같아 심장이 보슬거린다. 속도를 늦추어도 봐주지 않는 자동차가 야속하게 주차장 칸을 메운다. 업무복귀.
시선을 거두고 보송해진 심장을 챙겨 사무실로 들어섰다.
반가웠다 강아지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