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호우.태풍. 폭풍.
폭풍하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 생각나 멋지다는 생각이 들긴한다.
이틀째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 내가 사는 지역에는 폭염주의보에 바짝 마른 세상인데 땅덩어리가 그다지 크지도 않은 나라 안에서 한쪽은 물벼락을 맞았고 한쪽은 더위에 질식하는 중이다. 라디오에서 양이 문제라며 혀를 찬다.
140여년만의 폭우라고 하니 가히 기록적이다. 공포로 물든 도심 한복판은 전쟁터보다 살벌하다. 자동차로 마비되던 도로에서 덩치큰 어른이 물살에 떠밀려 넘어지고 휩쓸린다. 저지대나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의 피해는 말로 형용하기 힘들다. 반지하의 문이 수압때문에 열리지 않아 일가족이 참변을 당한다. 길을 가던 행인이 갑자기 불어난 물과 압력에 열려 버린 맨홀로 빨려 들어간다. 행방불명 또는 사망 속보가 뜬다. 불안하고 안타깝다. 참으로 자연 앞에서 미약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세상에는 많은 병이 존재하고 또 새로운 병이 만들어 진다. 지난 몇년은 새로운 병균에 의해 전세계가 잠식당하고 수만년동안 이루어진 삶이 완전히 바뀌는 경험을 우리는 경악하며 마주했다.
과학이 발전하고 눈부신 성장을 우리는 실감나게 이루어냈다. 그러나 최근 몇년간 인간은 너무나 미미한 존재이고 아는 것도 없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절망하는 중이다. 대부분의 병은 원인조차 찾아내지 못한다. 최근 내가 겪은 일련의 일들은 의학의 한계를절실히 느끼게 했었다.
잘난 척 아무리 날 뛰어봐야 결국 자연에게는 너무도 하찮은 존재가 인간이다. 나는 세월이 겪을수록 두렵기만하다. 나이가 들수록 보고 겪는 일이 많아질수록 그만큼 겁이 난다. 세상은 넓은 만큼 아니 그 보다 더 많이 예측할 수 없는 곳이다.
아직도 비는 내리고 잠시 소강상태였던 집중호우가 다시 예보되어 있고 연일 집중호우와 관련한 속보가 나온다. 앞으로 변화된 자연환경의 영향으로 이런 일은 계속될 것이라는 뉴스를 보며 불안증은 강박에 가깝게 심장을 조여온다. 세상 살기 참 어렵고 두렵다.
오늘밤은 고질병으로 자리잡은 불면증이 더해질 것 같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두려움이나 공포심은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범위에서 벗어난 재해는 좌절을 맛보게 한다. 어차피 살아야 할 시간이라면 잊자. 두려움은 잊고 예전처럼 하루하루를 살아보자. 의지와 관련없는 부분은 오래동안 생각한들 해결되어지지 않는 것이니 겸허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밖에. 누구의 잘못도 아닌 현상에 관한 문제일 때가 더 많으므로. 물론 언론은 문제를 끊임없이 찾아내고 끼워맞추겠지만 우린 알고 있지않나? 그건 핑계를 찾는 헛된 몸짓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