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을 인정하며 살아야 한다고 특히 현대인들은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었던 이야기다.
봉건시대를 거치며 경직된 우리나라는 보수적인 측면이 꽤 많이 남아 있고 암암리에 대중 속에서 튀는 행동이나 사고를 인정하지 않는다. 또 가끔은 그들을 비난한다. 겪어보지 못하고 가까운 곳에서 바라본 적이 없으면서 다수를 이루는 우리와 다르다고 비난하는 것을 보며 나도 가끔은 그런 오류에 빠지기도 한다고 인정하는 바이다. 어쨌든 사담이 길었다.
오랜 꿈처럼 마음에 남아있던 갈망의 하나가 그림 그리기였다. 쉽게 접근하기 힘들었고 학창시절의 미술시간만으로는 더 접근이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화실을 기웃거리다가도 두려움부터 몰려와 발을 내딛기 쉽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만 흘러가던 나에게 진짜 우연같은 필연으로 농담처럼 시작한 미술수업이 시작되었다. 글쓰기 동아리에서 언니가 수채화를 가르쳐주겠다고 확답을 주며 시작된 한달에 한번뿐이 시간. 목마른 우리에게 작은 즐거움을 주는 시간이었다.
언니가 미리 그림 소재를 찾아오고 우리는 완전 초보자의 실력으로 따라그리며 그림을 익히기로 했다. 따라 그리면 다 똑같은 그림이니 식상할 것 같다는 나의 생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6명이 모두 한 그림을 놓고 따라 그렸는데 모두 다르다. 6인 6색이라는 말이 실감되었다. 그리고 그림속에 묻어나는 그 사람의 성품이 보여 신기하기도 했다. 빠르고 급한 성격이 오롯이 드러나는 나의 그림이나 깔끔하고 모범적인 성격은 그림에서도 선이 간결하고 깔끔했다. 활달한 성격은 그림이 큼직하고 시원하다. 눈치가 빠르고 배려심이 좋은 사람은 그림을 살피는 것도 꼼꼼해서 모난데 없이 꼼꼼하게 장점을 캐치해 그렸다. 신기하고 놀라웠다. 누구도 모자람 없이 예쁘게 그려놓은 그림을 보며 그리는 동안 서로를 응원하며 인정해주는 모습을 보며 잘 시작했구나 싶었다. 이 작은 반란이 우리 글에 더 예쁜 살을 붙이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리라고 나는 믿는다.
작은 종이에 그려진 그림 하나도 이렇게 다양한데, 겨우 6명도 이렇게 다른데 수십만, 수백만, 수천만의 인간이 같을 수가 있겠나. 다양성의 인정에서 부터 아름다운 어우러짐이 시작되는 건 아닐까 하는 깨달음이 미술 수업 중에 문득 떠올랐다.
뭔가를 완성하며 느끼는 만족감도 좋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어울려 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아 행복한 시간이다.
무엇이든 배우고, 시작하는 것은 행복을 준비하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