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은 준비되어 있는 감정이 아니다. 시도때도 없이 슬퍼지고 끝도없이 우울의 감정으로 빠져든다. 그나마 병으로 진행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지경이다. 부모님께 감사한다. 다행히 비교적 긍정적이고 활동적인 성격으로 낳아주신 덕분에 탈출이 쉽다.
밤새 내린 비는 끝을 모르고 아침에도 세상을 적시는 중이다. 사물은 고요 속으로 침잠하고 비와 어울어진 자동차 바퀴 소리와 바닥을 때리는 빗방울의 연주는 귓구멍을 파고들어 심장까지 진동한다. 청량한 소리의 연주에 우울하던 마음은 여전히 낮게 가라앉아 일어설 줄을 모르는데 심장을 파고드는 진동으로 작은 파장이 인다. 덕분에 버티는 중이다.
십자가 앞에서 아침기도를 하다 문득 왜 이렇게 불안해 하고 있을까가 떠 올랐다. 정해지지 않은 미래에 대한 막연함이 불안을 만들고 우울을 동반하며 결국에는 슬픔과 원망을 낳았다. 일련의 변화는 매일, 매순간 일어나는 마음의 변덕이라 내가 컨트롤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리고 매순간이 불안했다. 나의 삶은 항상 하느님의 시선에서 살짝 벗어난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함. 버리지도 그렇다고 안아 일이켜주지도 않는 시선의 사각지대가 내 위치는 아닐까라는 헛된 생각. 역시 불안은 불안을 만들어 내는 모양이다.
안되겠다.
이럴 땐 책을 펼쳐 또다시 생각의 늪으로 빠지기 보다는 시간을 죽일 수 있는 작업거리를 찾는게 좋겠다. 바늘을 들까 스케치북을 열까 고민한다. 다행이다. 정신 없이 배워 둔 여러가지 취미가 이럴 때는 시간을 죽여주는 위로가 된다.
비가 참 예쁘게 내리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