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퇴근으로 지친 몸과 뇌는 거의 마비상태였다.
빼곡히 자리잡은 차량들 사이를 둘러보다 결국 이중주차로 어렵게 자리를 잡아주고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현관문을 밀고 거실로 들어서니 집은 어둠에 휩싸여 절간같다. 아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 싶어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침대에 누운 아들과 눈이 마주쳤다. 불도 안켜고 뭐하냐고 물으려다 시야에 가득하게 잡히는 무언가에 놀라 말문이 막혔다. 밝은 조명으로 바꾸느라 비교적 큰 사이즈의 거실등을 구입하고 관리실 영선기사님이 달아주셨던 거실등이 자신의 자리를 탈출중이었다. 그 큰 등이 빨갛고 파란 두둘의 전선에 악착같이 메달려있다. 아들녀석이 나오더니 무서워서 전기를 모두 꺼 두었단다. 나는 일단 메인 전원을 내렸다. 토요일 밤 늦은 시간의 이 참사를 어찌 수습해야하나 답답하게 머리를 굴린다. 밤새 어설프게 메달려 있는 전등이 떨어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주말이라 수리기사를 부를 수도 없는데. 어쩌지. 평소에도 손재주가 꽝이라 도움이 되지 않았던 남편의 빈자리마저 생각나며 지금의 상황이 억울하고 속상하다.
친정 남매들의 카톡방에 사진을 찍어 올렸다. 응급대처방법이라도 귀동량하려는 몸부림이었다. 서울 사는 동생들은 안타까워하면서도 어쩌지 못 하고, 가까이 사는 언니가 내일 날 밝으면 형부가 봐 주겠다고 한다. 한줄기 빛이다. 고마웠다. 조금전까지 암담하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등 아래에 쿠션과 방석을 깔고 추락을 대비해 둔 뒤 안방 침대에 누웠다. 마음은 여전히 답답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이제 봤다며 제부와 곧 와 보겠다는 연락이다. 그리고 십분만에 공구까지 챙긴 제부가 나타나 해체 작업 시작. 거의 해체가 끝나갈 무렵 인근에 사는 막내 제부마저 달려왔다. 뚝닥뚝닥 금방 제 조립후 안전하게 설치를 마친다. 솜씨가 좋다.
술이라도 한잔 사주고 싶은데 피곤하다며 다음을 기약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나도 피곤한 몸을 침대에 뉘었다. 이유없이 눈물이 났다. 고마워서, 미안해서, 그리고 누군가가 그리워서.
최근에 유독 무언가가 고장나고 부서지고 하는 일들이 생기는 빈도가 잦다. 그럴때 마다 억울하고 속상하고 그리워서 그래서 또 잊고 살자던 누군가가 생각이 나서 눈물이 차 오른다.
오늘은 고마움의 지분이 조금 더 많은 날이다. 그래도 가족이 주위에서 언제든 도와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힘든 일이 생길 때 내편이 되어주고 의지가 되어 줄 이들이 주위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위로가 되어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편안하게 잠드는 밤이다.
그래, 아직 나는 잘 살고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