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습관적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시간 죽이기에 제격이다. 오늘도 장르불문 글을 읽는 중이다. 그러다 멈추었다. 책은 가끔 나를 멈추게 하는 문장을 던질 때가 있다. 여전히 심장에 금이 가는 문장과 맞닥뜨려 주춤 눈이 멀어지고 머리가 소란해진다.
다음에, 라고 미루면 그 다음은 없더라는 문장을 보며 그렇구나 깨달음이 몰려든다.
남편과 나는 참 많이 싸웠다. 여느 부부들처럼 한 십년은 싸운거 같다. 아니 내가 몰아세웠었나? 여튼 서로 물러설 때를 알게 된 게 십년은 걸리더라는 말이다. 그리고 나머지 십여년의 시간은 못마땅하지만 참는 걸로 싸움을 피했지.
이십년, 두번째 십년이 얼마 남지 않은 그때 문득 떠오르던 생각은 애처러움이었다. 그도 나도 최선을 다해 살아왔구나하는 깨달음.그도 힘들었겠구나 나하고 사느라고 하는 이성적 판단. 예전 결혼기념일의 어느날, 남편과의 대화가 떠 올랐다. 마침 오늘은 20주년 결혼기념일이었고 오전에 그의 납골당에 다녀온 오후였다. 결혼은 둘이 했는데 선물은 왜 나만 해야하는 거냐는 질문에 나는 당신과 살아주잖아,라며 너스레를 떨었고 남편은 그건 그렇네,라며 웃었다. 참 좋은 남자였다.
결혼 18주년을 얼마남겨두지 않은 즈음 문득 그가 애처러워, 그의 고단함이 눈에 들어와 내 마음에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아직 고등학생인 아들의 입시만 끝나면, 나의 아니 우리의 모든 스타트는 그때로 미루어졌다.
나중에, 그와 여행을 가야지.
나중에, 꼭 그와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걸어야지.
나중에, 싸울 때는 밀어붙이지 않고 그의 말도 들어줘야지.
나중에, 그를 따뜻하게 바라보며 내가 먼저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나중에는 꼬옥 나와 살아줘서 고맙다고 얘기해 줘야지.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
그렇게 미루었던 어떤 것도 해 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결혼 기념일 20주년의 오후에 그가 누워 쉬던 침대 오른 쪽에 그 모습 그대로 기대 앉아 후회한다.
미루질 말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