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이니?

by 완뚜

수년만에 여행을 다녀왔다. 의무처럼 신청을 했고 무겁게 발걸음을 내딛고 따라나선 길이었다. 그런데 너무나 즐거웠다. 무엇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동료애였을까, 같은 힘겨움을 나눌 수 있다는 위로를 깨달아서 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오랜만에 느끼는 사람의 생기 탓일까.

하여튼 즐거웠던 뒤끝이라 컴퓨터 앞에 앉아 영상을 만들었다. 기념으로 남기고픈 여행은 짧은 영상을 만들어 두는 버릇이 있다. 사진을 연결하고 간간히 찍어둔 동영상도 넣었다. 약간의 조잡함도 있지만 일이 바빠 짬을 낼 수 없어 간단히 작업을 마무리했다. 기념삼아 동료들과의 단톡방에 올렸다. 의외로 반응이 폭발적이다. 다행이다.


며칠 뒤 한분이 동영상 제작하는 걸 가르쳐 달라고 한다. 긴 설명이 힘들어 그러마 대답했다. 다음날 또 다른 한명이 연락이 왔다. 동영상 만드는 거 가르쳐 달라며 만들어야 할 것이 있다고 한다. 관심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관심을 보인다. 내가 만든 걸 보고 쉽게 생각한 모양이다. 영상이 필요한 동료들에게 자신이 직접 영상을 만들겠다고 확언을 하고는 내게 연락했다는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프로그램이 어떤건지도 모르는 사람이 뭘 믿고 저렇게 얘기했는지 모를 일이다. 일단 내가 쓰는 프로그램을 구입하던지 B품을 구해 컴퓨터에 깔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한번에 배울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못 알아 먹는다. 짜증을 내며 어떡하냐고 자기가 영상만들겠다고 얘기 다해두었다고 목소리가 높아진다. 나는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10년의 사진작업과 7년의 동영상 작업에 내 시간을 투자했다고, 그동안 밤도 부지기수로 샜고 동아리 팀원들과 작업실에서 긴 시간을 보냈다고,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배운 결과 지금의 수준이 되었다고. 차분히 설명하고 전화를 끊었다. 몇 시간 뒤 다시 전화가 왔다. 내가 배운 곳을 소개해 달라는 전화이다. 검색해서 보내 줬더니 집에서 멀다고 바로 포기다. 겨우 30분 거리인데. 나는 그보다 먼 곳을 오가며 배웠는데. 멀어서 못 배우겠다며 하는 말이 언니는 할 줄 아는게 많아서 좋겠단다. 헐.


속이 상했다. 내 젊음과 시간을 투자해, 내 뼈를 갈아넣어 배우고 다듬어 나갔던 것들이 참 가치없이 평가되는 기분이다. 씁쓸하고 슬프다. 지금 나는 그동안의 시간을 무시당한 거 같은 기분이다. 오늘은 그런 기분에 자꾸만 화가 난다.


내일은 쉽게 생각하던 그동생을 조금은 불쌍하게 여겨 볼까 싶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 해 주고 싶다.

"쉽게 하고 싶다가 쉽게 포기하니 할 수 있는 게 없는거야. 나는 아무 것도 쉽게 생각한 적이 없어. 시작하기 위해서는 심사숙고했고 시작한 후에는 최선을 다했지. 아직도 무언가를 시작하면 그것에 뼈를 갈아넣지. 자수 수업 8시간 듣고 자수 작품을 만들어 가방으로 만든 것만도 20개 넘어. 그렇게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계속 연습하고 연구하면서 내걸로 만들어 나갔어. 나는 적어도 하나를 배우면 그게 쓸모있기를 바라며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을 쏟아 붓는단다. 그래야 내 것이 되더라고. 글쓰기도 시작한 후 지금까지 매일 쓰려고 노력 중이야. 최근 시작한 그림도 하루 한 작품 이상은 그리려고 최선을 다해 시간을 만들고 있어. 세상에 그저 되는 건 없어. 재능은 오만을 부를 수도 있지만, 노력은 결코 사람을 속이는 법이 없거든. 그래서 나는 재능은 없지만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해. 덕분에 가끔 작은 대회에서 상도 타고 자존감도 높이는 정도는 되고 있지. 너도 노력 해 봤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어."


개그맨을 만나면 웃겨보라하고, 가수를 만나면 노래 불러보라 한다지. 나도 가끔 지인들이 행사가 있다며 사진 찍어달라고 하고, 영상 만들어 달라고 강요같은 부탁을 할 때가 있다. 너는 그 정도는 쉽잖아라는 뉴앙스를 깔고서. 나도 그게 쉽지는 않다고, 남의 중요한 행사이니 부담도 되고 그래서 긴장되고 몸도 피곤한데 심지어 돈벌이로 하던 그 일을 무료 봉사해야하고, 남들은 편안히 의자에 앉아 행사에 참석하는데 나는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얌전 떨어야하는 곳에서 동분서주 뛰어다니며 촬영해야하고, 그런 노동력에 보태어 축의금도 추가되니 나는 남들보다 두배로 힘들다고. 아니, 인화까지 해 주고나면 세배가 힘든건가. 말하지는 못하고 속만 타는 경우가 참 많았지. 결국 카메라를 정리하고 이제 사진은 안찍는다고 말하며 거절했던 그때가 기억이 나네.


사람들아, 제발 남에게 부탁할 때는 쉽게 접근하지 말고 조금 더 생각하고 조금 더 조심스럽게 그렇게 접근했으면 좋겠어.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