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 작가는 [미안한 마음]이라는 산문집에서 이렇게 썼다. "마당에 네 평 정도 되는, 수첩만 한 텃밭이 하나 있습니다".
'우와 네 평 만한 수첩을 가진 작가가 부럽네, 얼마나 좋은 글을 그 넓은 수첩에 잔뜩 적어 놓았을까.' 라는 생각에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상상의 나래를 폈다. 그리고 그 네 평짜리 텃밭을 상상했다.
그 아래 바뀐 챕터에는 네 평짜리 텃밭에 고추 이십 포기, 피망 두 포기, 가지 네 포기, 토마토 열 포기, 상추 오십 포기를 심었단다. 세상에 부럽기도 하다. 많이도 심었다. 우리집 아파트 베란다를 바라보니 한숨이 나온다. 베란다 앞에 작은 화분 두개와 전자제품회사에서 만든 가로 60센티, 세로 20센티정도의 인공식물제조기(?)에서 이제 막 싹을 틔운 노란꽃은 요즘 나의 귀염둥이들이다. 애지중지, 피곤한 퇴근길에 신발을 벗어던지면 제일 먼저하는 일, 예쁘게 잘 크고 있구나 한마디 해주며 급수기에 물을 넣고 바라보는 일, 이것만으로도 충만한 날들이다. 한겨울에 꽃을 틔우기 위해 웅크린 녀석이 예뻐서 매일 들여다 본다. 작은 공간 내어 준 내 선택을 칭찬하며 행복하기만 하다. 그런데 네 평 짜리 텃밭에 온갖 채소를 키우는 작가는 심지어 본인의 수첩 크기조차 네 평 짜리 텃밭에 비유한다. 하기야 그 텃밭이 얼마나 소중하겠는가. 텃밭에 비유된 작가의 수첩에는 수 많은 글이 쓰여지고 남겨져 있을 것이다. 크기와 무게에 상관없이, 때로는 즉흥적이고 때로는 고뇌로 얻어진 글이 두서없이 쓰여졌다가 매일 가꾸어지기를 반복하다가 아름답게 피어나고 새로운 상에 올라 맛을 평가받겠지. 그의 텃밭 채소들의 미래처럼.
나는, 작가의 텃밭이 부러웠다. 처음에는 그랬다. 그런 다음에는 네 평 짜리 수첩이 부러워졌다. 다듬어지고 정성을 주며 키워가는 수첩속 글감이 부럽다. 가로세로 60에 20짜리 내 텃밭 크기의 수첩에게 미안하고 가꾸기를 게을리해서 더 이상 키우지 못했던 수많은 글감에게 미안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네평짜리 수첩보다 크기를 키우기 위해 들여다보고 쓰다듬고 애정을 주며 바라보련다. 시작은 창대하게 끝은 흐지부지하지 않고 한번 심은 씨앗은 꽃피우지 않더라도 싹은 틔워보련다.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