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에 꽃이 피었습니다
세번째 봄입니다.
첫번째 봄.
너무 낯설고 어색하던 처음이었습니다.
지기들이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를 위로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밤 벚꽃 놀이를 가자더군요. 느즈막이 구한 직장생활로 심신이 지쳐있던 나는 그 고운 꽃조차 심드렁했고 끝없이 나를 몰아붙이며 슬픔에 잠식되어 있던 때였습니다. 코로나가 창궐하고 마스크는 일상이 되어가고 불편한 삶이 이어지던 그때, 밤 벚꽃놀이는 위험한 유흥처럼 보여습니다. 유원지의 봄은 꽃보다 많아보이는 마스크부대가 점령 중이더군요. 오랜만에 많은 사람에 치이면서도 별보다 화사하고 밝은 벚꽃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지기들은 이리저리 행복한 발걸음으로 카메라에 꽃을 담습니다. 나도 덩달아 그들에게 동조합니다. 이제 슬픔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비록 마음은 여전히 암흑이고 심장은 칼이 꽂혀있는듯 매순간 쓰렸지만 안그런척 해야하는 시기라 여겼습니다. 그래야만 할 거 같았습니다. 무겁고 아픈 첫번째 봄에는 지기들이 나에게 조금쯤의 위로는 되더군요. 그래도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두번째 봄
아직도 그의 부재가 낮설기만 하고 함께 산수유꽃길을 손잡고 걷던 때만 기억에 선명합니다. 봄은 매년 돌아오는데 왜 그는 돌아오지 않는지, 빨리 돌아와 내 옆에 서 있으라 어거지라도 부리고 싶습니다. 봄은 새로 시작하는 계절이라는데 나는 새 직장과 새 환경속에서 여전히 갈피를 못잡고 혼자 두돌째의 아기처럼 방황 중입니다. 넘어지고 깨지며 무언가를 잡고 일어서던 아이가 이제 제법 걸음마를 걷고 있는데, 그래서 주위 어른들이 조금은 안심하던 그 순간의 두살짜리 나는 사실 더 혼란스러운 방황중입니다. 걸을 수는 있게 되었는데 정작 길을 모르니 한걸음이 더 두려운 시기, 딱 그런 시기에 봄은 여전히 화사한 자태를 드러냅니다. 내 걸음을 대신해 주던 남자의 부재는 이제 온통 내 삶을 뒤흔들다 못해 다른 삶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래서 아직 아물지않은 상처를 품고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꼭꼭 가슴에 숨겨두고 있는데 봄꽃은 아랑곳없이 예쁘게만 피어 화사한 자태를 드러냅니다. 나는 아직도 혼자 그 남자와의 봄을 기억하며 아프고 어설픈 계절을 지냅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곁을 떠난지 2년 6개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계절이 색깔옷을 갈아입고 저마다의 화려함을 뽐내는 봄이군요. 여전히 심장은 꽁꽁 얼어붙어 겨울잠자는 것처럼 내 안에 웅크리고 있을때였습니다. 조금씩 앞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옆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처럼 웅크리고 아파하는 아이가 거의 삼년만에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신이 번쩍들었습니다. 슬픔이 물러간 자리에 미안함이 들이찹니다. 아이는 더 아팠을지도 모르는데 나만 아프고 힘들다고 온몸으로 회피하고 있었던건 아닌지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습니다. 아빠의 부재와 함께 아이는 엄마도 잃어버리고 지낸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어 가슴이 아팠습니다. 봄은 참 화창하고 잔인하게 깨달음을 주더군요. 아이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몇년을 침대와 한몸이던 아이와 이른 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일출을 좋아했던 남편과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아빠가 있었으면 좋아했겠다는 말을 웃으며 나눕니다. 여행을 좋아했던 세식구는 두식구가 되어 첫여행을 왔습니다. 이른 유채가 예쁘네요. 이번 봄은 일찍 맞이하고 예쁘게 기억하겠습니다. 아들과 함께라 다행입니다.
출근길, 신천에 피기 시작한 꽃망울이 눈에 들었습니다. 꽃을 보면 울컥 눈물이 차오르던 내 눈은 이제 반짝이며 주위를 살핍니다. 여전히 심장은 시리고 아프지만, 눈물이 멈춘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아! 봄이구나.' 소리내어 말하며 작은 기대도 가져봅니다. 분명 어제보다 오늘은 조금더 행복해 질거라고 기대합니다. 아이에게 전화를 합니다. '아들, 신천에 꽃이 피었네.'
세번째 봄,
우리는 다시 가족이 되었습니다.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