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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뚜 Apr 04. 2023

사랑하는 당신에게


봄볕이 따가운 날입니다.

이렇게 날씨 좋은 날에 우리는 매번 꽃놀이도 가고 해그름에 동네 공원으로 산책도 나갔지요. 아이는 킥보드를 타고 나는 자리를 깔고 누워 소설책을 보며 시간을 보내곤 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아이가 성인이 되었네요. 돗자리에 누워 책을 보고 있으면 슬며시 다가와 앉아 무릎을 내어주던 당신이 생각나 웃음이 나네요. 부끄러운듯 주위를 살피면서도 바닥에 머리를 대고 누운 마누라의 머리카락을 집요하게 만졌지요.  눈은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도 포기하지 않던 그 눈빛이 생각납니다. 당신은 한결같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첫 만남에서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던 당신과 눈이 마주치며 웃던 내모습이 너무 예뻤다고 그래서 사랑하게 되었다고 했지요. 부끄럼 많은 당신이 참 많이도 사랑을 속삭여 주었지요. 그러니 내가 안 넘어가고 배길 재간이 있겠어요? 두번째 만남에 벌써 공주처럼 살게 해주겠다고 했던 당신에게 마음의 축은 이미 기울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속전속결 결혼을 하고 아이가 왔고 투닥거리며 살아왔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신의 공주로 여왕마마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온 삶입니다. 당신 덕분입니다. 누군가에게 최고의 사람으로 대접받는다는 건 행복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쉬울 뿐입니다. 진작 알았더라면 조금은 더 다정하게 사랑을 담아 당신을 대할 수 있었을까요?

웃는 모습에 반해 사랑하게 되었다던 당신은 내가 우는 것을 몹시도 싫어 했지요. 영화를 보며 우는 모습조차 싫어했었지요. 그럴때면 종내에는 내곁으로와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놀리거나 우스게 소리로 울음을 그치게 하고야 말던 사람입니다. 덕분에 의식적으로 당신앞에서는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지요. 또 그 눈물을 이용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도 했던 조금은 약삭빠른 사람이 당신의 아내입니다. 그런 아내라도 좋다고 뭐든 다 해주고 싶어하던 당신이 이제야 고맙습니다. 길을 가다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을때도 있었지요. 처음에는 놀라고 당황했던 나도 어느순간부터 발을 내밀었지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신발끈을 다시 메어주며 말했지요. 끈 풀리면 넘어진다고, 너는 잘 넘어지니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다정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내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신발끈을 매어주던 당신이 참 좋았습니다. 깔끔쟁이가 그럴땐 바닥에 무릎을 꿇고도 신경쓰지않았지요. 오직 나의 신발끈에 집중하던 당신을 보며 내가 첫번째인 것만 같아 많이 행복했습니다.


오늘은 긴겨울을 지나고 모처럼 따뜻한 날이라 오랜만에 당신에게 갔습니다.  처음으로 당신을 만나러가서 울지 않았습니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눈물을 참았습니다. 그동안은 그렇게 노력해도 안되던 것이 이제 되더군요. 다행히 당신도 조금은 덜 슬프게 나를 봤겠다 싶어 나를 칭찬합니다. 당신 앞에서 딸처럼 이뻐하던 조카와 장난도 치고 깔깔거렸습니다. 마치 재롱을 떨 듯,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듯 그렇게 깔깔거렸고, 봄 꽃 앞에서 사진도 찍고 당신 사진에 묻은 봄 먼지를 닦았습니다.

나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울지도 않고 씩씩하게, 처음에는 많이 힘들고 그래서 매일이 눈물바람 이었지만 이제 조금씩 적응도 합니다. 이런 내가 당신은 섭섭한가요? 느린 걸음으로 일상을 회복 중인 우리를 보며 분명 당신은 좋아할 거라고 믿습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한시름 놓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니 나는 잘 지내야 합니다. 아니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당신 덕분입니다. 이만큼 견딜 힘은 당신 사랑의 산물입니다. 추억이 있어 조금만 외롭게 잘 지내고 있겠습니다. 정말입니다.

심장은 여전히 아프지만 웃으면서 당신을 만날수 있어서 이번 봄이 예쁘네요. 당신 미소가 생각나 더 예쁜 봄입니다.

곧 산수유도 허드러지게 필텐데 당신과 손잡고 마주보며 웃던 그 길이 많이 그립습니다. 노란 산수유를 배경으로 웃던 당신, 오랜만에 짓는 그림처럼 예쁜 미소를 내가 한참 마주보며 신기해서 함께 웃었지요.  내 미소는 그렇게 좋아했으면서 본인은 왜 그리도 미소에 박했던지요. 당신의 웃는 모습이 기억속에 몇번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미소가 각인된 내 심장이 기쁘면서도 아파서 그래서 한번 더 당신 사진을 만져 봅니다.

이제 나보다 젊은 당신을 봅니다. 그렇게 두살 많은 걸 어른이라고 우기더니 이제 내가 앞장서게 생겼네요. 내가 곧 누나가 되고 어르신이 되겠네요. 당신을 이겨 먹어버렸어요. 이겨도 기쁘지도 않게 당신을 이겨버렸어요. 당신인생을 추월한 오늘, 이번 봄이 참 예쁘네요. 눈물나게 예뻐요.


사랑하는 당신.

이제 웃는 얼굴로 조금은 뜸하게 당신을 보러 올렵니다.그래도 되겠지요. 이제 나 기다리지 말고 걱정도 하지말고  잘 지내고 있는거 의심하지도 말고 잘 있어요. 잘 지내요. 나처럼 잘 지내요. 그렇게 우리 살아 보아요. 당신은 천국에서 나는 이생에서.

그러다 꼭 다시 만나요.

내가 당신곁에 갈 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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