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웠던 기억으로 미화하고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저장한다. 추억은 미화된 생활이다.
출근 길, 현관에서 신고 갈 신발을 찾다가 맨발로 현관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렇게 서서 신발을 꺼내는 나를 무척이나 싫어했던 어떤 남자가 떠올랐다. 양말만 신고 내려서서 신발장을 열고 있으면 그는 어느새 득달같이 나타나 혀를 끌끌차며 '더럽다니까, 양말이 더러워지잖아.'하며 핀잔을 준다. 그리고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들어봐.'하면 파브로프의 개처럼 그의 어깨에 손을 뻗어 중심을 잡고는 발을 든다. 그러면 그 남자는 내 발목을 잡고 발바닥을 손으로 털어주고 내가 고른 신발을 발에 신겨준다. 가끔은 손에 주렁주렁 달고 있는 가방이 많다고 발을 들라고 한다. 왜냐고 물으면 '신발 신겨줄께.' 하던 그 남자가 문득 떠오른다. 기억은 이렇게 준비도 없이 훅 치고 들어온다. 그때는 잔소리만 같았고 귀찮기만 했는데, 오늘 갑자기 떠 오른 기억에 깨닫는다. 나 진짜 사랑받고 있었구나. 그 깔끔쟁이가 남의 발을 털어주고 신발 밑창을 손바닥에 올려두고 신을 신겨주었다. 그걸 왜 이제 알아챘을까. 그때 알았다면 사랑한다는 말이라도 한번 더 해주었을텐데.
차를 운전하며 신나는 음악을 튼다. 손가락을 까닥이며 박자를 맞춘다. 애써 즐겁기로 한다. 최면을 잘 걸고 있는 중이다. 나는 즐겁다. 나는 즐겁다. 아무 문제도 없고 잘 하고 있으니 즐겁다. 그런데 후두둑 떨어지는 슬픔에 결국 입술을 깨문다. 기억속의 나는 즐겁지 않았는데 그때가 그리우니 어찌된 일일까. 자꾸 그와 갔던 강변과 그와 걷던 꽃축제와 그와 앉아있던 소파가 아른 거린다. 또 시작이다. 이 악당은 시도 때도 없고 예의가 없다. 티브이를 보며 깔깔거리다가 '좋단다.' 하며 씨익 웃던 그가 생각났다. 단순하다고 놀리던 그가 그립다. 그때처럼 단순하게 살수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에게 기억은 그리움이며 아픔이고 돌이킬 수 없는실수이다. 아쉬움이고 아련한 추억이다. 그래서 기억은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