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by 완뚜

오랜만의 풍경에 가슴이 뛰었다.

아들을 학교 앞에 내려 주며 마주하는 풍경. 비록 마스크는 쓰고 있지만 많은 학생이 교문에서 한 곳으로 향하는 모습. 너무 오랜만이라 낯선 모습. 참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 새삼 감동적이다.

코로나로 일상이 뒤엉켰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소소한 일상의 중요성, 그리고 그 일상을 빼앗겼을 때의 불편하고 슬픈 우리의 모습,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중이다. 빠른 회복으로 다시 웃고 떠들고 손잡고 밥 먹는 최소한의 생활을 하게 될 날을 기대했다. 나도 그랬다. 남편이 밖에서 제시간에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코로나로 사람 모인 곳을 피하던 남편은 점심 식사를 사람이 적은 늦은 시간에 했다), 아이가 아침이면 등교를 하고 나는 도서관 봉사도 가고 주말 종교 활동도 하는 그런 삶, 시간이 지나면 돌아올 줄 알았고 그래서 참았다. 고통스럽지만 더딘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이제 코로나가 1단계로 낮추어졌다. 아이는 등교를 시작했고 나는 주말마다 성당에 가고 도서관에서 소모임이지만 수업도 시작했다. 그런데, 남편은 식당에서 제시간에 점심을 먹기는커녕, 출근도 못 하고 있다.

우리 집에도 일상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남편과 아들의 토닥거림과 스포츠 경기를 얘기하며 서로 흥분하던 모습, 입시가 끝나면 둘이 프리미어 리그 경기 관람 가기로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 그가 아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해 보니 그는 너무 많은 약속을 남겨 두고 떠났다.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우리 가족의 평범했던 일상.


나는 내 슬픔에 빠져 변화된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하고 아이의 변화도 눈치채지 못했다. 사실 바뀐 일상은 아들에게도 불편한 일상이었다. 아빠의 부재와 함께 말수가 급격히 줄어든 엄마 때문에 아들은 눈치꾼이 되어가고 있었다. 잘 하려고 노력하는 아들은 엄마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밤이 되면 엄마 자러 가자고 권하는 것으로 시작해 침대에 누운 나를 꼭 안아 주고는 나도 금방 잘 게, 하고는 불을 끄고 방문을 닫아준다. 나는 숨 죽이고 기다린다. 현관 중문의 손잡이 배꼽도 눌러 잠그고 아이 방의 불이 꺼진다. 최근 변한 아들의 일상이다. 부모 몰래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하던 그래서 혼나기 일쑤였던 아들이 변했다. 눈에 보일 만큼 노력하는 아들을 보며 차라리 예전의 철 없던 아들이 그립다. 돌아갈 수 없는 한 달 전의 풍경이 그리울 줄은 진짜 몰랐다. 그런 토닥거림이 행복이었으리라고는 정녕 몰랐다. 미치도록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거 같다. 나는 평소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호언장담했었는데 결국 내 안의 기본적인 확신도 다 무너졌다. 의지하던 하늘이 무너진다는 것은 모든 것에 타격을 받고 모든 것이 변화되며 그 변화가 다시는 회복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원히 변했다는 의미다. 내가 간절하거나 말거나.

이제 정신을 차리자.

그만 슬퍼자고 파이팅해서 용기를 내어 보자고 다짐했는데 일상의 작은 풍경 하나에도 흔들린다. 아직은 조금 더 슬퍼할 때인 모양이다. 영원히 돌아가지 못할 우리 집의 평범했던 일상이 새삼 그리워 가슴이 시리다.

빈자리.
그가 빠져나간 그 자리가 점점 더 크게 몸집을 키운다. 무섭다. 이러다 내 삶 전체를 그의 빈자리가 차지하면 어쩌지? 지금도 이렇게 아픈데 회복될 조짐은 보이지 않고 강도를 더하는 그리움에 심장이 절규한다. 슬픔이 과하면 심장병이 걸릴 수도 있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이 든다. 내 심장은 생애 처음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는 중이다. 매일 매 순간 심장의 통증이 강해지고 있다. 버텨 낼 수 있을까? 내 심장.

운전하는데 자꾸 시야가 흐려진다.

눈물이 나는 것도 아니다. 미간에 힘을 잔뜩 준다. 또렷해지는 시야, 그리고 금방 흐려지는 풍경들. 자꾸만 초점이 흐려지고 정신을 가다듬지 않으면 눈의 초점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 매직아이를 보면 잘 보일까? 나는 매직아이를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눈에 탈이 났을까? 심장에 탈이 났을까? 이러다가 바보가 되는 건 아닐까? 심장이 자꾸만 이상 신호를 보낸다. 심장의 고통이 올라와 뇌를 무디게 하고 사고를 정지시킨다. 급기야 눈의 초점을 흩뜨리며 시야를 막아선다.


심장아,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