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55

by 완뚜

남편을 처음 만나고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날 6755일.
그리고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48일째.
현실적인 걱정에 머리가 무겁다.

남편이 남긴 돈과 부채. 그것의 균형을 잡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경단녀의 새 출발은 험하기만 하다. 먹고 사는 문제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치열했으며 국가 경기는 엉망이다. 취업 사이트에는 구인 광고가 올라오기 바쁘게 수십에서 수백 명이 몰린다. 이쯤 되면 구인도 쉽지는 않겠다. 많은 사람 중에 좋은 인재를 뽑는다는 것도 힘든 일이겠다. 남편이 옆에서 평생 우리 가족을 책임질 것이라고 믿고 살았던 내가 한심스러워 참을 수가 없다. 이 나이에 뭘 한단 말인가? 아이가 아직 학생이니 시간의 제약도 있고 마음먹은 것처럼 될 리가 없다.

청년 일자리, 경단녀, 재취업 같은 문구들이 연일 뉴스에 나왔지만 콧방귀였다. 노력하면 되지 좋은데만 가려고 하니 갈 곳이 없는 줄 알았다. 참 철부지였고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았다. 나의 하늘이 잘 가려 주고 있었던 덕분이다. 밝은 하늘빛을 발산해 주었으니 그 뒤의 어두운 세상을 알 리가 없었다. 그의 사랑이 과해 현실감이 없어진 나는 바보가 되었다.

살길은 막막한데 아직도 자존심은 남았나 보다. 괜찮다. 할 수 있다. 잘 될 거다. 버틸 수 있으니 조금만 여유를 가져보겠다는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기 시작했다. 거짓말을 제일 싫어했는데 나는 그의 부제로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그의 자존심과 나의 자존심, 우리 가족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당분간은 버틸 수 있겠지? 자존심이 밥 먹여 주는 것은 아니라 하지만 아직은 일상이 엉킨 우리의 버팀목 정도는 되어 주지 않을까? 너무 막막한데 자존심 하나로 아직은 버틸만 하다.

내일은 또 어디를 뒤지고, 파 보아야 하나? 한계에 닿기 전에 빨리 자리를 잡고 싶은 조급함이 내 목을 조인다. 성급하게 준비하지 말라는 조언도 여러 번 들었지만 부질없는 조언이다. 한계를 알고 있는 사람은 나뿐인데, 내가 조급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한 달의 정산이 돌아오고 결제해 달라는 곳의 연락을 받을 때면 맥이 빠진다. 좀 아껴 살걸. 남편만 믿고 살았던 나는 뒤 늦게 철퇴를 맞는 기분이다. 남편의 부재 후 내가 질러 놓은 생활비라는 명목의 뒷치닥거리를 해야 한다. 카드값이 놀랍다. 한 번도 결제금액이 얼마라고 얘기해 주지 않았던 내 남자는 도인이었나보다. 그는 진짜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자였다. 말하지 않아 몰랐던 그의 능력을 무시하며 살던 나는 나쁜 아내다. 그래서 더 미안한 마음만 가득한지도 모르겠다.

그가 없는 하루가 지나면 그 하루만큼의 후회와 미련이 늘어난다. 함께 했던 18년, 적어도 그와 만나 함께했던 6755일의 시간만큼의 후회와 미련이 지나야 사라지려나? 그에게 더는 미안하지 않은 날이 오기는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