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처럼

by 완뚜

적막하다.
일을 정리하고 여유가 생기니 틈이 보인다. 곳곳에 그가 벌려 놓고 떠난 틈이다. 틈새로 부는 바람이 매섭다. 기어이 가슴에도 바람이 분다.

요란한 일상이었다.

아침 일찍 공원에서 아침 운동을 다녀오면 어김없이 '운동 다녀 왔나?' 하는 남편의 전화를 받는다. 집에는 혼자였지만 음악을 틀어 놓고 청소를 했고, 시간마다 걸려 오는 남편의 전화로 드라마 한 편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오후가 되면 아들이 돌아오고 나는 공부하라고 따라다니며 조르느라 시끄럽다. 남편이 퇴근하면 그때부터는 아들과 남편에게 골고루 잔소리를 늘어놓는 나와 온종일 있었던 일을 내게 들려주느라 바쁜 남편의 수다는 쉴 틈이 없었다.

일상이 소음이었다.
아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면 나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안방에 누워 있던 남편은 급히 뛰어나와 앞뒤 베란다 창문을 닫는다. 그리고는 웃으며 말했지. 아파트에 사는 사람 중 제일 시끄러운 여자라고, 아파트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겠다고. 살짝 민망하지만, 다혈질 성질을 못 이겨 다음에도 또 소리를 지르곤 했었다. 누워 쉬는 남편에게 빨리 재활용 쓰레기 비워 달라고 조르기도 했고 집은 세 식구가 산다고 하기에는 소란스러웠고 번잡했다. 복작거리느라 집은 항상 좁게만 느껴졌다.

숨이 막힌다.
너무 조용해 발자국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아들은 더이상 내가 잔소리를 하지 않도록 조심하느라 눈치꾸러기가 되었다. 나는 내 잔소리를 웃으며 들어 줄 사람을 잃고 급격히 말수가 줄었다. 집의 냉장고조차 숨소리를 죽인 듯 고요하다. 이따끔 베란다 앞 도로로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만 간간이 들린다. 신기한 것이 소방서가 가까이 있어 매일 들리던 소방차 소리조차 최근에는 듣지 못했다. 확실히 이상해졌다.

내가 이상하다.
세상에 초연해졌다고 해야 하나? 어느 것에도 흥미가 동하지 않는다. 가식적으로 예쁘네, 재밌네 하며 동조하지만 무의미하다. 이제 재미있는 것을 찾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던 나의 긍정적 성격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제 내게 남은 숙제 하나만 완성하면 그만인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재미가 없다. 그렇게 싫기만 했던 남편과 토닥거림이 그립다. 문 열고 들어와 내 염장을 지르며 농담을 늘어 놓던 남자가 보고 싶다.

고요가 잠시나마 깨진다.
공부하다 휴식하러 아들이 나왔다. 티브이를 틀고 야구 중계를 본다. 아들과 스포츠를 보며 토론하던 어른 남자가 사라졌다. 티브이 소리가 작게만 느껴진다. 신기하다. 얼마 전까지 소리 좀 줄이고 보라고 노래를 불렀는데 아들은 이제 소리를 키우지 않는다.

모든 일상이 변했다.
한 사람의 부재는 식재료를 1/3로 줄였고 밥솥을 10인용에서 4인용으로 바꿨다. 청소기는 매일 돌리던 것을 2~3일에 한 번 돌려도 어질러지지 않는다. 거실 티브이 볼륨은 12를 넘던 것이 8을 넘지 않는다. 쓰레기봉투도 곧 10리터로 바꿔야 할 것 같다. 나의 일이 줄었다. 대신 무료함은 몇 배가 늘어난 것 같다. 무료한 시간을 견디다 못해 그리워하다가 결국 눈물을 흘린다.

벗어나고 싶었다.
몸이 피곤하더라도 빨리 일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쉽지가 않다. 이 고요가 힘겹다. 심장이 아파 죽을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도서관에서 미술 수업을 들었다. 돌아오니 여전히 고요하고 무료하다. 책을 읽었다. 이렇게 조용한데도 머리에 들어가지 않아 같은 문장을 수십 번 읽다가 책을 덮었다. 이제 무얼 해야 할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 심장과 머리에 그가 들어온다.

거실에 걸린 가족사진을 본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건지 의문이 든다.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 보낸 그 사람이 내일이면 긴 여행에서 돌아올 것만 같다. 예전처럼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에 전화를 걸어 "느끼한 것만 먹었더니 매운 것 먹고 싶네. 엽기떡볶이 콜~"하며 웃을 것만 같다. 그러면 나는 "콜."이라고 대답해 줘야지. 미친 상상에 헛웃음이 났다. 부질없는 상상이다.

오늘도 이 고요가 여전히 낯설다.
빈집처럼 적막하지만 뭐 이건 이것대로 좋은 점도 있겠지. 책에 집중하면 금방 한 권 읽을 수도 있고, 방해꾼도 없잖아. 좋은 점만 생각하자. 익숙해지자. 아직은 조용해서 조금 어색하고 무섭지만, 곧 괜찮아질 거야. 나는 적응력 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