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불편하다. 장례식 후 한 번이라도 만났던 지인은 그나마 마음의 고통을 나누었고 더는 그 부분은 건드리려 하지 않는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지인을 마주하게 되면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도서관에 갔다. 지난주에 만난 사람들이니 괜찮겠다는 마음이었다. 함께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다른 날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날이었다. 이야기 주제에 조심하는 눈치가 보였지만 배려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아직 내게 조금의 배려는 필요하니 뻔뻔하겠지만 모른 척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돌아 나오는 길에 몇 달 만에 만나는 분과 마주하게 되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서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잘 지냈냐고 잘 지냈다고 대답하니 뭘 잘 지냈겠냐고 이해한다는 표정을 짓는다. 씁쓸한 미소를 지어 주고 우스게 소리 몇 마디 나누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도 날씨는 기가 막힌다. 이번 가을은 유독 하늘이 예쁘다. 코로나로 황사도 심하지 않고 공기는 맑고 하늘이 높다. 이런 날이면 남편과 나는 외출하고 싶어 몸이 가만있지를 못했었다. 그래서 더 속이 상한다. 운전석에 앉아 무의식적으로 집으로 향했다. 심장이 펄떡거리다 못해 입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난리를 부린다. 겨우 주저앉힌 감정이 널을 뛴다. 별 이야기도 없었고 즐겁게 있다가 나왔다. 왜 이럴까? 며칠 잘 감춰 두었던 그 사람 생각이 울컥 올라왔다. 머리에서는 계속 '뭘 괜찮겠냐.'던 그분의 말과 표정이 맴돈다. 숨겼던 감정을 들킨 것 때문인지 동정 어린 표정이 가슴을 후벼대는 것인지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막 아프고 정신이 없다. 집까지 오는 과정이 기억에서 삭제되었다.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는데 차마 버리지 못한 남편의 옷이 보였다. 잘 어울렸던 잠바, 가을부터 봄까지 몇 년을 즐겨 입었던 낡은 잠바. 그 옷을 보면 그가 생각나고 그의 부재로 인한, 외로움이 나를 덮친다. 한동안 전 국민이 구매해 입었을 정도로 유행을 탔던 옷이라 오래되었지만, 가끔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래서 각오하지 않고 있다가 문득 그를 생각하고야 마는 옷이다. 한참을 안고 울었다. 왜 그는 여기 없을까? 도서관에서 돌아오면 '집에 왔나?' 하며 어김없이 울리던 그의 전화도 울리지 않는다. 미칠 것 같다.
아들이 올 시간이 다 되어 간다. 잠바를 내 옷장 한편에 잘 걸어 둔다. 왠지 내 옷과 그의 옷이 나란히 있어야 할 것만 같다. 목으로 올라오는 슬픔을 억지로 밀어 넣고 눈물을 닦고 빨개진 눈자위를 물로 씻어 낸다. 쉽게 진정되지 않는 심장이 여전히 불규칙하게 뛴다. 눈치 빠른 녀석이 알아채지 못 해야 할 텐데. 빨리 수습하고 아무일 없는 척 편안한 척 준비를 서두른다.
티브이를 켠다. 어디 웃긴 개그 프로그램이라도 있는지 찾아본다. 다 잊으려면 독한 처방이 필요하다. 숨을 고르는데 계속 꺽꺽 치받는 울음소리에 당황스러워 거실을 몇 바퀴 걸어 본다. 볼을 두드려 보다 창밖을 본다. 내가 좋아했던 풍경이 여전히 그곳에 있다. 하늘이 어찌 저렇게 파란지. 구름은 또 어찌 저렇게 하얗고 몽글거리는지. 새삼 내가 좋아했었던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이 좋아 하늘을 테마로 전시회를 하고 싶었던 나였다. 오일파스텔 그림을 배우는 중인데 메인 테마를 습관적으로 하늘 풍경에 집중하다 보니 8살 조카가 "이모 하늘 그려 봐. 이모는 하늘만 그리잖아."라고 할 정도이다. 하늘에 꽂힌 여자였다. 습관이 무섭다. 습관적으로 그를 기다리고 습관적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그 좋아했던 하늘이 밖에서 반짝인다. 이제는 하나도 예쁘지 않은 그 풍경은 예전과 달라진 것 없이 여전한데 가슴은 하나도 즐겁지 않다.